김현경 여사가 말하는 ‘남편 金시인’
“닭하고 토끼하고가 의좋게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의식의 심부에는 어떤 미신적인 요소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닭띠이고 나의 아내가 바로 토끼띠이니까 말이다.”
토끼띠로 올해 96세인 고 김수영 시인의 부인 김현경 여사가 18일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토끼 모양 장식물을 앞에 둔 채 웃고 있다. 김 여사는 “(김 시인은) 진짜 알맹이를 놓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용인=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김 시인은 자신의 시에 쉽게 만족하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만날 때마다 서로 써온 시를 바꿔 읽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김 시인이 ‘똑같은 시는 쓰면 안 된다’며 가져온 종이를 찢더라고요. 당시 시인이 1945년 문예지 ‘예술부락’에 발표한 시 ‘묘정의 노래’를 읽고 조지훈 시인이 깜짝 놀랄 정도였는데 말이죠.”
김 시인의 1949년 작품 ‘토끼’는 이렇게 시작한다. “토끼는 입으로 새끼를 뱉으다/토끼는 태어날 때부터/뛰는 훈련을 받는 그러한 운명에 있었다”. 김 여사는 “여동생이 우리 신혼집을 찾아와 ‘친정에 토끼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식을 전해주자, 내가 토끼띠라는 걸 알던 김 시인이 단숨에 써내려간 시”라며 “(김 시인은) 토끼같이 날 예뻐했다”고 했다.
김 시인의 삶은 파란만장했다. 가세는 기울고 병치레로 고생하다 김 여사를 만났다. 1950년 결혼 직후 6·25전쟁이 터졌다. 김 시인은 북한 의용군으로 징집됐다가 탈출했다. 광복 후 ‘폭포’ ‘푸른 하늘을’ 등 강렬한 현실의식을 담은 시를 쏟아내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1968년 그가 ‘토끼같이 예뻐했던’ 아내와 두 아들을 남기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숨졌다.
“공부벌레인데, 정직하고 진실했어요. 늘 본질을 추구하면서 새롭게 쓰고 차원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죠. 머물지 않고 늘 앞서가는 자유정신으로 펜을 잡았어요.”
김 여사는 눈이 그렁그렁한 채 말을 이어갔다.
“요즘도 혼자 집에 있으면서 일과가 김 시인의 책을 읽는 거예요. ‘김수영 학문’이 생길 정도로 많이 읽히고 인정받는데,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싶어요.”
용인=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