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미, ‘오펀스’로 8년만에 무대 복귀
연극 ‘오펀스’에서 갱스터 남성 해롤드 역을 맡은 추상미가 자신을 납치한 고아 형제 트릿과 필립에게 말을 건네는 장면. 그는 “8년 만에 돌아온 무대를 통해 위로를 전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레드앤블루 제공
“예술가로서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져야 한다는 소명을 갖게 됐어요. 운명 같은 작품이죠.”
배우 추상미(50)가 연극 ‘오펀스’로 8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오펀스’는 미국 극작가 라일 케슬러의 대표작으로, 미국 필라델피아 북부에 거주하는 고아 형제 트릿과 필립이 중년 남성 갱스터 해롤드를 납치한 뒤 함께 살며 가족이 돼 가는 이야기를 그렸다. 추상미는 해롤드 역을 맡았다.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9일 만난 그는 “오랜만에 무대에 서니 살아 있음을 느낄 정도로 행복하다”며 “위로와 격려를 건네는 역을 맡았는데 관객들이 울고 웃는 모습을 보며 제가 격려를 받았다”고 했다.
‘오펀스’는 2017년 남성 배우로만 캐스팅해 국내 초연한 후 2019년 처음 여성 페어가 꾸려지며 젠더프리 작품이 됐다. 이번 공연에선 네 명의 남녀 배우 남명렬, 박지일, 추상미, 양소민이 번갈아 가며 해롤드를 연기한다. 케슬러는 해롤드를 마초 캐릭터로 설정했지만 추상미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소화했다.
“해롤드는 끝없는 경쟁과 소외에 지친 우리 어깨를 주물러주는 존재예요. 남성 갱스터보다는 고아로 자라 아직 양육에 서툰 인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그는 해롤드를 연기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 1994년 연극 ‘로리타’로 데뷔해 올해 30년 차인 베테랑 배우지만, 남자 배역을 맡은 건 처음이다. 해롤드를 완벽하게 소화하기 위해 일상에서도 목소리가 가늘어지지 않도록 애쓴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털털한 면이 많았다. 계속 연습한 덕분인지 최근 아들이 ‘엄마 변했어. 조폭 같아’라고 했다. 따라 한 건 아니지만 남편(배우 이석준)과 표정, 제스처가 닮아 있어 스스로도 놀랐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젠더프리 작품에 꾸준히 도전할 계획이다.
트릿과 필립처럼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상처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기도 해요. 상처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폐기물이 아니라 더 단단해지기 위한 삶의 재료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2월 26일까지, 4만4000∼6만6000원.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