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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일했는데 2년 더 하라니…정년 연장보다 부자증세·급여인상이 먼저”

입력 | 2023-01-20 16:57:00

佛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뛰쳐나온 시민들




1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원들과 시민들이 몰려나와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내가 평생을 일하고 이제 정년이 다 돼 가는데 2년을 더 일하라고 하니 화가 나서 나왔습니다.”

우체국 직원인 프레데릭 보아장 씨는 19일(현지 시간) 낮 12시경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시작된 연금개혁 반대 시위에 나와 “정부가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춘다고 하지만 아마 곧 또 67세로 연장한다고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프랑스 주요 노동조합 단체 8곳은 에마뉘엘 마크롱 행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연대 총파업을 벌였다. 오전부터 프랑스 전역의 기차,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이 일부 멈추고 출근을 거부하는 학교 교사들이 생겨나며 혼란이 커져 ‘검은 목요일’이란 말이 나왔다.

1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근처에서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부자들은 연금개혁에 기여하고 있지 않다며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일찍 일 시작한 사람, 여성들에게 불리”
이날 파리 도심의 레퓌블리크 광장은 노조 관계자는 물론이고 일반 시민들까지 쏟아져 나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은 저마다 주장을 담은 피켓을 들고 나시옹 광장까지 약 3km를 행진했다. 프랑스 내무부에 따르면 파리에서만 8만 명을 비롯해 마르세유, 스트라스부르그, 보르도, 릴 등 전국 각지에서 120만 명이 시위를 벌였다. 노동총연맹(CGT)은 이날 모인 인파가 200만 명 이상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경제활동을 일찍 시작한 사람들은 그간 연금 보험료를 더 오래 내 제도에 기여를 많이 해왔는데 연금개혁을 하면 지금보다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분노했다. 보아장 씨는 “20세가 되기 전에 일을 시작해 연금 보험료를 오랫동안 냈는데 (연금개혁안에 따라 계산해보면) 내 수령액이 왜 이렇게 적은지 이해가 안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출산과 양육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이 불이익을 당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번 연금개혁으로 최저연금을 받을 수 있는 근로기간 요건이 엄격해진다.2년 전 은퇴한 여성 넬리 알바레스 씨(65)는 “여성들은 아이들을 돌보느라 일을 쉬다보니 (연금 수령을 위한근로기간을 채우려면) 더 늦게 은퇴해야 한다”라고 했다. 여성들은 경력 단절이 많다 보니 연금개혁으로 최저연금을 받기 위한 근로기간을 채우기 어렵다는 얘기다.

19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 인근에서 정부의 연금개혁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정년) 62세, 이미 너무하다. 64세, 고통이 두배가 된다’는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 31일 추가 파업 예고, 난항 예상
10, 20대 젊은 참여자들은 연금개혁이 자신들에게 큰 영향을 주는데도 직장에서 나오기 힘들거나 실업 상태여서 시위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했다. 이날 파리 3구에 있는 튀르고 고등학교에선 학생 50명가량이 학교 앞에서 “더 많이 일하고 덜 살아야 한다”고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정부가 정년을 늦춰 연금을 늦게 주는 대신에 먼저 부자 증세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세 운전사 피에르 브라케 씨는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를 위해 연금개혁에 반대한다”며 “은퇴를 늦추기보단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 연금 재원을 충당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금 재원은 근로자 급여와 고용주 부담으로 쌓이고 있는 만큼 급여를 인상하면 재원이 늘어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성을 밝히지 않은 민간시설의 여교사 안느 씨(26)는 “물가 상승률이 7%일 정도로 심각하니 급여를 인상해 연금을 더 많이 걷으면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날 시위가 과열되면서 흥분한 시민들이 쓰레기통을 던지거나 유리창을 깨는 등 폭력 사태도 발생했다. 경찰은 이날 파리에서 38명을 체포했다고 BFM 방송이 보도했다.

노조 단체 8곳은 국회가 연금개혁안을 1차로 심의하는 다음 날인 31일 추가 파업을 예고했다. 한편마크롱대통령은 이날 스페인 바르셀로나 방문 중에 “연금개혁은 정당하고, 책임감 있는 조치”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파리 도심 건물 옆에 ‘이익을 막대하게 본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자’는 포스터가 붙었다. 연금개혁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정년을 늦추는 대신 부자 증세로 연금 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한다.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