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에 가볼만한 ‘토끼산행’ 월악산에 뜨는 달속의 옥토끼 북한산 능선에 선 쌍토끼바위 토끼해 이벤트 즐기고 싶다면
충북 제천에 있는 월악산(해발 1097m)은 소백산을 지나 속리산으로 연결되는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충주호의 비경을 바라보면서 오를 수 있는 월악산 영봉 등산길은 거대한 암봉이 이어지는 험준한 산세이지만 겨울 산행의 백미인 눈꽃과 상고대를 볼 수 있다. 임혁성 씨 제공
《계묘년(癸卯年) 설 연휴를 앞두고 토끼의 하얀 털처럼 보송보송한 눈이 덮인 설산(雪山)을 찾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은 ‘산림경제’에서 “토끼는 1000년을 사는데 500년이 되면 털이 희게 변한다고 한다”라며 흰토끼를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상징으로 보았다. 용궁에 잡혀가도, 호랑이에게 먹힐 위기에도 지혜로 탈출해내는 토끼는 지혜와 성장, 부부애와 화목을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모두 다 친근하게 여기는 토끼의 미덕을 생각하며 겨울산에 올라보자.》
●월악산의 달토끼, 옥토끼
상고대가 피어난 월악산의 소나무.
월악산 영봉으로 오르는 길. 안개 구름이 휩싸여 수묵화 같은 풍경이다.
월악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영봉 위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신라시대 월형산(月兄山)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월악산 달맞이 산행도 일품이다. 월악산 영봉에 걸리는 커다랗고 둥근 달은 자연스럽게 옥토끼(달에 산다는 토끼)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부터 조선시대 한시, 민화, 구비문학에 이르기까지 옛사람들은 달에 토끼가 살고 있으며, 토끼를 달의 정령으로 여겼다. 예로부터 토끼는 선한 품성과 평화로움 때문에 이상향에 사는 동물로 생각했다. 달은 사람들이 생각한 이상적인 세상이었기에 달에 사는 토끼 전설이 시작됐다고 보기도 한다. 토끼는 달에서 절구로 떡방아를 찧고 있다고 흔히 말하지만, 원래는 약초를 찧어 신선들을 위한 장생불사 약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달토끼의 전설은 만병통치의 약 ‘토끼의 간’으로 이어져 ‘별주부전’ ‘수궁가’에 영향을 주었다는 해석도 있다.
서울의 명산인 도봉산 망월사(望月寺)에도 달과 토끼에 대한 전설이 내려온다. 대웅전 동쪽에 토끼 모양의 바위가 있고, 남쪽에는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마치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다’는 데서 망월사란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야기다. 원래는 신라시대 수도인 경주 월성(月城)을 바라보며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달토끼의 전설은 우리의 산하 곳곳에 남아 있는 정겹고 평화로운 이미지임에 틀림없다.
●북한산 의상능선 ‘쌍토끼 바위’
서울 북한산 의상능선에 있는 ‘쌍토끼 바위’.
북한산성 입구에서 의상봉 방향 능선의 가파른 암릉을 네 발로 기다시피 하며 올라간 지 1시간여. 갑자기 시야가 탁트이는 절벽 위에 용의 뿔을 단 개구리 얼굴같은 바위가 나타났다.
전통적으로 토끼를 그릴 때는 한 마리만 그리지 않고 두 마리를 그린다. 달에서 계수나무 아래 방아를 찧는 쌍토끼를 비롯해 민화 ‘화조영모도’에서도 모란꽃 아래 두 마리의 토끼를 그려 넣었다. 부부애와 화목함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의상봉 능선에서 쌍토끼 바위에 손을 대고 새해 소원을 빌어본다. 우리 부부에게도 사랑이 넘쳐나고, 가족도 늘 건강하고 화목하기를.
의상봉 쌍토끼 바위의 넉넉한 엉덩이는 긴 뒷다리를 감추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토끼의 뒷다리는 앞다리보다 2∼3배나 길다. 그 덕분에 토끼는 오르막과 평지에서 최대 시속 80km까지 껑충껑충 뛸 수 있다. 그러나 내려갈 때는 속도를 내지 못해 사냥꾼들은 아랫방향으로 토끼몰이를 한다. 높이 오르는 습성 탓에 토끼는 승진과 출세, 성장의 상징이기도 하다. 토끼님, 새해에는 코스피 주가도 오를 때는 팍팍 오르고, 내려갈 때는 조금씩 내려가게 해주시길.
서예가 장천 김성태의 계묘년 신년 휘호 ‘교토삼굴’.
판소리 ‘수궁가’에서 토끼는 자라의 속임수에 용왕한테 끌려가 간을 빼앗길 위기에 몰린 힘없는 서민들의 상징이다. 권력자(용왕)와 그 하수인(자라)의 농간에 멍하니 있다 보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앗길지도 모른다.
월악산 산행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하는데 친구가 퀴즈를 냈다. “토끼가 동물의 제왕이 됐다고 한다. 어떻게 됐을까?” 글쎄. 작고 귀여운 초식동물 토끼가 어떻게 제왕이 됐을까? 답은 ‘깡과 총으로’였다. 카리스마 넘치는 무서운 토끼다.
●토끼해 설 연휴 가볼 만한 곳
국립민속박물관 토끼해 특별전의 ‘토끼와 자라’.
글·사진 월악산=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