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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연욱]선거제 논의, 대연정 사태를 돌아보라

입력 | 2023-01-21 03:00:00

盧대연정, 대통령제 현실 넘지 못해
명분과 현실 조화 찾는 논의 돼야



정연욱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에 중대선거구제를 내건 명분은 현행 소선거구제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최다 득표자 한 사람만 당선되는 소선거구제에선 사표(死票)가 많이 발생하고, 거대 양당 대결 구도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한 선거구에서 2명 이상 뽑는 중대선거구제를 이런 폐단을 극복할 하나의 대안으로 모색해 보자는 취지일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는 여야, 지역별로 워낙 이해관계가 첨예한 이슈라서 설령 대통령이 얘기했다고 해도 성과를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언급은 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 의제처럼 힘이 실린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손봐야 하는 시점에서 공론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은 한 셈이다.

본격적인 선거구제 논의를 위해선 18년 전, 2005년 6월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살펴봐야 한다. 선거구제 개편 내용 자체가 파격이었다.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것을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이 동의해준다면 국무총리는 물론 장관 임명권을 야당에 넘기겠다고 했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것인데 여야 연립정부(연정·聯政)를 협상 카드로 던진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여야 영수회담을 포함해 설득전에 나섰다. 위기를 탈출하기 위한 국면 전환용이라는 야당 반발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야당에 권력을 넘기자는 말이냐”는 거센 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근본적 문제는 권력구조와 정당 체제에 대한 몰이해에서 찾을 수 있다.

친노 세력이 대연정 성공 사례로 든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내각제와 이원집정부제를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중심제인 한국의 정당 체제를 단순 비교하면서 논리가 엉켜 버린 것이다. 유럽 국가들은 한국의 대통령제보다 권력이 느슨한 정치 체제의 특성상 한 정당이 원내 과반을 차지하기 어려워서 여러 정당이 다당제 연립정부를 구성해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연정에 참여한 정당들이 정책 갈등 조정에 실패하면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다시 치르는 현실은 우리와 너무나 다르다. 친노 진영이 띄운 독일식 연정이 힘을 받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굳이 미국의 민주-공화당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정당 체제는 대통령당과 대통령을 반대하는 야당, 양당제로 수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집권 대통령당과 차기 대선을 노리는 유력 주자가 이끄는 야당이 민심을 잡기 위한 비전·정책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다.

오랫동안 지역 기반을 다져온 3김(金)시대가 막을 내린 뒤 대통령당과 제1야당이 격렬하게 맞서는 양당 체제는 더욱 공고해지는 분위기다. 제3지대 정당들이 활로를 찾지 못하고, 대선 때마다 거대 양당 후보를 중심으로 후보 단일화 논의가 끊이지 않는 이유 아닐까. 갈수록 거칠어지는 진영 대결의 전장이 된 거대 양당 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명분이나 목적과 현실을 혼동해선 안 된다. 정치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좁혀서 접점을 찾는 영역이다.

대연정 제안이 결국 좌초한 것도 그 취지를 떠나 우리 정치지형의 엄중한 현실을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았기 때문 아니었을까. 지난 정권에서 거창한 명분을 내걸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강행 처리했다가 결국 비례 위성정당으로 뒤집어 버린 낯 뜨거운 일이 반복되어선 안 될 것이다. 본격화될 선거제 논의가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