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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민심]소아과 ‘오픈런’ 댓글 최다빈도어가 ‘돈’인 이유[데이터톡]

입력 | 2023-01-21 14:00:00


오늘은 소아과 오픈런을 하고 왔다. 어제부터 갑자기 마른기침을 켈록켈록 하더니 간밤에는 꽤나 뒤척이면서 콧물까지 흘리는 아기 때문이었다.
동네에 유일하게 갈 만한 병원 하나가 일요일 오전 진료도 하길래 오픈 시간에 맞춰서 ‘똑닥(병원 예약앱)’ 예약을 하고 갔다. 바로 예약했는데 이미 내가 선택한 선생님은 16명 대기 중. 나머지 선생님 둘도 20명 이상씩 대기 중. 내가 예약하자마자 다시 들어가 보니 선생님 셋에 대기만 150명 가까이... 춥고 비오는 날 아침, 소아과는 정말이지 북새통을 이루었다.
- 5개월 아기 키우는 ‘soni’님 블로그(2022년 10월)

아이가 아파 밤새 애태우다 동네 병원이 문 열기를 기다려 ‘오픈런’한 경험, 영유아를 키우고 있는 사람에겐 익숙한 일일 것입니다. 인천 길병원처럼 입원실 있는 큰 병원마저 소아청소년과 진료인력 부족으로 입원진료를 잠정 중단했습니다.

정부는 필수진료과인 이른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의료 인력 부족 문제를 의대 정원 확대로 풀겠다고 하는데요.

의사 공급을 늘리면 정말 괜찮아질까요? 이번 ‘금요일엔 POLL+(www.donga.com/news/poll)’에서는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 계획이 실효성 있을지에 대한 의견을 물었습니다. 1만9150명의 응답자 중 65%(1만2491명)는 “(의대 정원) 늘려야한다”고 답했고 32%(6197명)는 “늘려도 도움 안 된다”고 답했습니다.

의사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지 않아도 ‘내외산소’로 인력이 흘러갈 것이라는 의견과 의사 쏠림 현상을 가져오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의대 정원을 늘려봐야 소용없다는 의견이 맞서는 모습입니다.

●댓글 최다빈도어 TOP5에 ‘돈’  
네티즌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2020년 1월19일부터 현재(2023년1월18일)까지 3년 간 ‘필수 진료’, ‘의대 정원’을 키워드로 종합일간지 10곳의 기사 213개를 찾아 댓글 1061개를 분석했습니다.

댓글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 TOP5는 ‘의사’, ‘의대’, ‘의료’, ‘정원’, ‘돈’이었습니다. ‘의사’ 등 검색 키워드인 단어를 제외하면 ‘돈’이 등장이 가장 의미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돈’이 사용된 맥락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의사들이) 돈 밖에 모른다’와 ‘돈(보상)이 해결책이다’라는 완전히 상반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거든요.

‘돈밖에 모른다’는 얘기는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댓글에서 나옵니다. 의사가 부족하니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하겠는데 수익이 줄어들 것을 걱정한 의사들이 반대하고 있어 문제라는 것입니다.
pkj3****오랜 기간 의사 증원을 집단적으로 반대해온 의사들의 직역 이기주의가 도를 넘었다. 그들의 행태는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돈벌이에 집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중략) 돈벌이에 집착하지 말고 의술의 실현에 보람과 가치를 느껴야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밥그릇’이라는 단어도 자주 보입니다.
free**** 의사가 충분히 많아 봐라, 기피과고 나발이고 그런 게 어디 있냐. 백날 시스템 타령 수가 타령이지. 밥그릇 안 줄이려고 의대 정원 안 늘리고. 의대 정원 늘리자니 환자 생명 담보로 파업이나 해대는 최악의 집단이 의사협회다. 
이런 견해엔 의사들이 이기적인 기득권 집단이라는 부정적 감정이 깔려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필수진료과 의사가 버는 돈은 상대적으로 충분하지 않아. 박탈감을 느끼지 않게 더 많이 보상해야 해” 라는 견해를 담은 댓글에서도 ‘돈’이 자주 쓰였습니다. 여기서는 보상의 대상이 의사 전체가 아니라 필수진료과 의사로 좁혀집니다. 의대 정원 확충보다 의료수가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입니다.
df06**** 의사를 매년 10만 명 뽑아봐라. 힘들고 돈 못 벌고 의료사고 많이 생기고 수시로 소송 걸리는 소아과 흉부외과 외과 내과 같은 과 할 바보가 어디 있음? 전부 미용 성형하고 그도 안 되면 미국 의사 시험 쳐서 미국으로 갈 거임. 
‘지역’, ‘지방’이라는 단어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mean**** 의사 수 늘린다고 지방 가서 소송위험 높고 진상환자 봐야하는 과 의사 하겠냐. 지역별로 수가를 차등화하든 기피과를 부양하는 정책을 써야지. 그냥 무턱대고 의사 늘리면 알아서 분배되겠지라는 간단한 생각으로는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없음.
여기서도 ‘돈’, 저기서도 ‘돈’을 얘기합니다. ‘돈’이 사용된 맥락은 다르지만 이번 분석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 논란의 핵심은 결국 돈이라고 보는 댓글 민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 현업에서 자기 전공 안 살리는 전문의들 
의대 정원 확대가 꼭 필요할만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수가 실제로 줄어들고 있을까.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2010년~2020년)를 보면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습니다.

전문의 시험을 통과한 의사 수를 보면 전체 전문의 중 소아청소년과의 비중이 지난 10년 간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2010년 7.5%에서 2020년 7.1%로 약간 줄긴 했지만 급격한 감소세라고 하긴 힘든데요.




그렇다면 왜 현장에서는 부족하다고 아우성일까. 현업에서 일하는 전문의 통계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전문과목별 의료기관 근무 전문의(2020년) 통계에 따르면 현업에서 소아청소년과에 근무하는 전문의 비중은 6.8%로, 전문의 시험을 통과한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비중 7.1%보다 낮았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현업에서 자기 전공을 살리지 않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성형외과, 안과, 피부과에서 전문의 시험을 통과한 의사 비중이 현업에서 해당 전공을 살려 근무하는 의사 비중과 같거나 후자가 다소 높은 것과는 대조적이죠.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시험을 통과한 의사 중 일부는 현업에서 자기 전공을 살리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위: %)




전문의들이 자기 전공 대신 다른 진료과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에 대해 아래 댓글은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jcj8**** 소아과 흉부외과 전문의 수는 지금도 충분해요. 대학병원에서 일할 의사(야간 당직의사, 응급실 상주의사)를 안 뽑아서 그런 겁니다. 전공의가 없는 이유는 나와서 전공 살릴 일자리가 없으니 신규 의사들이 지원을 안 하는 거구요.
필수진료과 전문의가 현업에서 자기 전공을 살리지 못하는 현 상황을 개선하기만 해도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런 해결책 대신 의대 신설 등을 통한 의사 정원 확대안부터 테이블에 꺼내놓으니 공감을 얻기 힘든 것 아닐까요?


Data Talk


데이터가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시대, 흩어져 있는 데이터를 모으고 씨줄날줄 엮어 ‘나’와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정보를 만들어 드리는 동아일보 온라인 전용기사입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