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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 미나리로 빚은 S급, 라타플랑 [바이브랜드]

입력 | 2023-01-23 17:00:00


출처 : 라타플랑


못난이에서 찾은 ‘예쁜이’로 만드는 가능성.
클린뷰티는 한국 '전통'
온라인 광고 시장이 치열해지면서 신사업을 모색하던 광고회사들은 커머스를 점찍었습니다. 마케팅 역량과 브랜딩 실력을 보여줄 좋은 수단이기도 했죠. 막상 성공시킨 곳은 드물었습니다. 사업에는 마케팅뿐만 아니라 전략, 기획, 재무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해서죠.

종합광고회사 빅밴드는 커머스 진출을 앞두고 외부에서 사업 전문 인력을 충원했습니다. 팀이 꾸려졌으니 사업 아이템을 정할 차례. 시장 규모도 크고 사업 확장성이 있는 뷰티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레드오션인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뾰족한 아이템을 찾아야 했죠.

해답은 ‘클린뷰티(Clean Beauty)’였습니다. 클린뷰티는 성분부터 생산 과정, 패키지까지 환경과 윤리성을 고려한 화장품을 말합니다. 글로벌 화장품업체 로레알은 “향후 50년 ‘강력한 윤리원칙’을 가져야 가장 강한 기업이 도리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삼정 KPMG 경제연구원은 클린뷰티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발표했죠.

(좌) 북한문화재 국보 제30호 수산리 벽화무덤 (2) 전라북도 유형문화제 제81호 문효공과정경부인영정 중 정경부인 모습. 갸름한 얼굴 곡선과 맑은 피부를 강조합니다_출처 : 문화재청


여기에 ‘한국적’이라는 키워드를 더했습니다. 라타플랑은 일본이나 중국의 가부키와 경극 화장처럼 피부색을 가리는 짙은 화장법과 달리 한국은 맑고 투명한 화장을 추구했다는 점에 주목하는데요. 문화재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줄곧 엷은 색조의 은은한 화장과 타고난 아름다움을 가꾸는 방식의 미용에 집중했습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고 보는 한국식 화장이 곧 현대의 클린뷰티와 결이 맞닿아 있다고 본 것이죠. 2020년 12월 클린뷰티 브랜드 ‘라타플랑’이 문을 연 배경입니다.
동의보감도 인정한 진정 효과
코로나19 사태 이후 마스크 착용으로 피부 트러블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진정 성분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습니다. 라타플랑도 이를 활용한 스킨케어 제품 출시를 결정했는데요. 문제는 병풀이나 어성초 등 피부 진정에 효과적인 원료를 선점한 브랜드는 이미 많다는 점입니다. 신생 브랜드로서 차별화된 원료를 발굴할 필요가 있었죠.

순천만 무농약 인증 미나리_출처 : 라타플랑


순천시는 흑두루미를 위해 습지 주변 전봇대를 뽑고 전깃줄을 지중화했습니다_출처 : 동아DB


자료 조사 중 동의보감에서 ‘욕창에는 미나리를 으깨 붙여서 진정시킨다’는 문구를 발견합니다. 미나리는 질소나 인, 중금속 성분을 흡수해 수질 정화에 효과적이기도 하죠. 이름의 유래가 ‘물에서 자라는 나물’인 만큼 수분감도 훌륭합니다. 이전엔 뷰티업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원료인 미나리 추출물을 핵심 성분으로 낙점한 배경입니다.

모든 미나리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무농약이어야만 했죠. 라타플랑을 전두지휘한 정광훈 커머스사업본부장은 “자연 원료를 쓰더라도 잔류 중금속이나 농약이 있으면 ‘클린뷰티’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체내에 화장품 유해 물질이 쌓이는 ‘바디 버든(Body Burden)’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깨끗한 원료가 필요했습니다.

2018년부터 친환경농업육성조례를 제정한 전남 순천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천만을 세계 최대 규모의 흑두루미 월동지로 복원하는 등 친환경에 진심인데요. 순천만 미나리로 화장품을 만들고 싶다고 하자 정작 시 관계자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오랜 시간 저온에서 추출하는 수비드 공법으로 미나리 효능 성분 파괴를 최소화해 제품을 생산합니다_출처 : 라타플랑


“미나리로 화장품을요?”
“한재 아니고 순천 맞아요?”

예상치 못한 활용법에 한 번, 순천이 미나리로 가장 유명한 곳은 아니었기에 두 번. 물론 새로운 판로를 개척할 수 있는 만큼 시에서는 적극 환영했죠. 지난해 4월 순천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순천만 무농약 인증 미나리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가장 쓸모 있는 못난이
순천시를 찾은 정 본부장은 한편에 가득 쌓인 미나리를 발견했습니다. 이파리 한쪽이 떨어지거나 해서 상품 가치가 없어 버려지는, 일명 ‘못난이 미나리’인데요. 무농약으로 키우는 만큼 솎아내는 것이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농가 소득은 물론이고 환경에도 악영향이었죠.

미나리 진정 라인 제품들_출처 : 라타플랑


출처 : 어글리어스 마켓


라타플랑은 푸드 리퍼브(Food Refub, B급 농산물을 적극적으로 구매해 제품화하는 것)를 떠올립니다. 애초에 화장품에 쓸 추출물이 필요했기에 멀쩡한 미나리도 으깨야 하는데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죠. 상대적으로 저렴한 만큼 원가도 절감하고 소비자가격도 낮추는 일석이조.

성분뿐만 아니라 제조, 유통, 소비 전 과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가치소비자가 늘어난 것도 못난이 미나리를 택하는 데 한몫했습니다. 지난 2019년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TV프로그램 ‘맛남의 광장’에서 ‘못난이 감자’를 완판시키면서 비규격품 농산물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는데요. 이 같은 농산물만 전문으로 파는 ‘어글리어스 마켓’ 등이 문을 열기도 했습니다. 먹고 바르는 산업에서도 ESG로의 흐름이 이어지는데요. 못난이 미나리를 적극 매입해 화장대에도 선순환을 불러오는 까닭입니다.

건강한 삶의 방식과 뷰티 루틴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합니다_출처 : 라타플랑


핸드&바디워시 등으로 제품군을 넓혀갑니다_출처 : 라타플랑


라타플랑은 브랜드 론칭 후 1년간은 광고를 적극적으로 집행하지 않았습니다. 무분별한 인플루언서 협찬과 마케팅은 클린뷰티 이미지와 부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요. 대신 도심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건강한 삶을 사는 이들을 인터뷰하고 매거진을 만들며 정체성을 다져왔습니다.

결국 아름다움은 미용이 아니라 속부터 차오르는 ‘건강’이 핵심이라며 스킨케어 외에도 다양한 카테고리로 확장하는데요. 올 1월 첫 라이프 케어 라인 ‘다홍’을 출시하고 패션 브랜드 ‘유가당’과 협업해 복주머니 형태의 에코백을 제작합니다. 장기적으로는 병원과 연계한 상설 매장에서 피부 측정을 통한 맞춤형 화장품을 제공하는 것도 구상하네요.

출처 : 라타플랑


이제는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데 주력합니다. 배우 박은빈, 고윤정 등 빅모델을 기용해 소비자 신뢰도를 높입니다. 물론 아무리 유명인이 광고하더라도 요즘의 똑똑한 소비자들은 무턱대고 믿지 않습니다. 이미지 뒤에 숨겨진 진정성을 살피죠. 농약 0.1g까지 제거한 라타플랑의 진심이 고객들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이 기사는 지난 1월 15일 발행됐습니다.


인터비즈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