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마곡 ‘LG아트센터 서울’ 개관후 첫 인터뷰
‘빛과 그림자’ ‘노출 콘크리트’의 대명사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 안도는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 마곡식물원 내 개관한 ‘LG아트센터 서울’의 설계를 맡았다. 안도는 개관 후 본보와의 첫 인터뷰에서 “건축가로서 항상 작품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라고 기업과 건축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사진 출처: Kinji Kanno
체감온도 영하 26도의 한파가 몰아친 24일 오후 2시.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 로비 안으로 들어가자 뮤지컬 ‘영웅’을 보러 온 시민들로 북적였다. 거대한 회색빛 콘크리트 벽면으로 햇빛이 쏟아지자 온기가 느껴졌다. 탁 트인 창문 밖으로 마곡식물원이 한눈에 들어와 마치 자연과 건축이 하나가 된 듯 했다. ‘빛과 그림자’ ‘노출 콘크리트’의 대명사로 불리는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82)가 설계한 건물에 들어온 것이 실감이 났다.
LG아트센터는 고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직접 안도에게 “시민 정신이 구현되는 공간으로 지어달라”고 요청하며 시작됐다. 6년 4개월 동안 2556억 원을 들여 완공했고, 지난해 10월 처음 문을 열었다. LG아트센터는 공공 기여를 위해 서울시에 기부채납한 뒤 LG가 20년 간 운영한다.
다음은 안도와의 일문일답.
― LG아트센터가 완공된 소감은 어떠한가.
“팬데믹으로 LG 아트센터를 직접 가보지 못 했지만 사진만 보더라도 LG가 공사를 매우 정확하고 세심하게 진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젠가 직접 방문해 LG아트센터의 내부 공간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 구 회장이 직접 설득해 설계를 맡아달라 했다고 들었다.
“지금도 어제 일처럼 그 순간이 기억난다. LG아트센터 부지를 함께 둘러보고 있었는데 구 회장이 확고한 목소리로 ‘진정 소중히 간직되는 건축은 항상 높은 공공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가 구 회장의 시민정신을 구현하고 서울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문화 중심지로 자리잡길 바란다.”
“건축은 내가 사회와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다. 때로는 이 대화가 사회에 내재된 문제를 다루기도 한다. 나는 항상 기능이 뛰어나고 편리한 건물만을 설계하지는 않는다. 건축가로서 항상 작품을 통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한국 기업인들이 나에게 관심이 있다면 내가 사회에 접근하는 방식에 그들도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LG아트센터는 마곡식물원 안에 위치해 있다. 자연과의 조화에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자연은 생명의 원천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연의 주기 안에서 살아야 한다. 사람과 자연 사이의 대화는 내 설계 과정의 근본이다. 자연을 건축물에 입히면 시간이 흐르며 빛, 그림자, 비, 바람이 움직이고 공간으로 풍부한 표현이 스며든다. 준 공공 공간인 LG아트센터도 탁 트인 로비 등을 통해 주변의 풍요로운 경관과 어우러지도록 했다.”
― LG아트센터를 찾는 시민들이 유심히 둘러봤으면 하는 장소가 있다면?
“미술관, 박물관과 달리 공연장 내 공공 공간은 대부분 방문객의 동선이 미리 정해져 순환형 경로로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LG아트센터의 경우 로비, 복도, 계단 같은 내부 공간들이 각각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고유한 성격을 가질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공연장에서 열리는 행사들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공연 전후 시간 또한 중요하다. 방문객 한 명 한 명이 자신만의 쉴 공간을 찾고, 그곳에서 경험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길 바란다.”
― 최근 가상공간(메타버스)이 확대되고 있다. 건축의 역할도 바뀔 거라 생각하는가.
“전례 없는 기술개발의 시대에 살고 있다. 편리한 세상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기술이 창의적 작품에 기여하는 가치가 있다는 것도 공감한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것은 모든 것을 가상 환경에서 재창조하려 한다는 것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인류의 비이성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를 복제할 수 없는 한, 마음을 울리는 건축은 변하지 않고 중요한 존재로 자리잡을 것이다.”
― 한국 독자들에게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은 본인 건축물이 있다면.
“일본이 아닌 해외에 지은 건축물을 추천해야 한다면 클라이언트 프랑수아 피노가 의뢰해 지어진 ‘파리 옛 상업거래소(Bourse de Commerce)’에 가보라고 하고 싶다. 18세기 곡물거래소로 쓰였던 곳인데 현대 미술관으로 복원하여 개조했다. 지난해 개관했는데 프랑스를 갈 일이 있다면 찾아가보면 좋을 것 같다.”
“일을 하면서 매일매일 새로운 도전을 마주한다. 내 관심사는 항상 일과 관련된 것이다. 새로운 영역을 추구하다 보면 더 깊이, 더 멀리 생각하게 돼 창의성이 고양된다. 건축을 시작한 이후로 항상 지난 프로젝트보다 더 나은 설계를 한다는 도전의식을 스스로에게 고취시켰다. 지금도 그런 신념을 마음 속에 품고 있다.”
― 본인만의 ‘하루 루틴’이 있다면 알려줄 수 있을까.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자리에 든다. 항상 유지하는 습관이 있다면 운동과 독서다. 퇴근 후 헬스장에 가고 매일 1만 보를 걸으려고 한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한 시간 동안 쉬면서 책을 읽는다. 수술 이후에 이런 일상 루틴을 유지해왔다. 덕분에 마음을 편하게 갖고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됐다.”
― 자서전에서 외할머니가 “돈은 쌓두는 게 아니다. 제 몸을 위해 잘 써야 가치 있는 것이다”라는 말을 듣고 세계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돈은 어떻게 써야 잘 쓰는 걸까.
“외할머니가 그 말씀을 하신 것은 내가 24살 때인 1965년이다. 외할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을 때마다 여행을 했다. 매 경험이 피가 되고 뼈가 되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돈을 모으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돈 자체는 쓰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중요한 것은 가끔 자신에게 투자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 걸까.
“예전보다 우울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행복을 측정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돈은 단순한 수단에 불과하고 삶의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열망을 결정해서는 안된다. 자신만이 마음 속에서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다. 나이가 얼마나 들었다거나 어떤 어려움이 닥쳤는지와 상관없이 계속 이 빛을 쫓아야 한다. 행복은 신체와 정신의 강인함보다 마음 속 끈기를 통해 얻을 수 있다.”
― 인생의 어려운 고비들을 극복해냈다. 본인에게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해외여행을 떠난 1965년 인도 갠지스강에서 목욕하는 사람 옆으로 사체들이 떠내려가는 현장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가 되는 것을 봤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며칠을 자문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삶은 죽거나 살아 있거나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내가 믿고 있는 것을 향해 싸워 나가야 한다. 패배하는 날도 있겠지만 괜찮다. 쓰러질 수 있는 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는 것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도는 청년 시절 건축과는 거리가 먼 프로 복싱선수였다. 우연히 헌책방에서 프랑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작품집을 본 뒤 건축의 세계에 빠졌다. 전문 교육 없이 독학으로 공부하며 1967년 건축연구소를 차렸다. ‘아웃사이더’였던 안도는 건축의 고정관념을 깨부수는 도전들을 끊임없이 해 나갔다. 빛과 그림자, 자연과 환경, 노출 콘크리트 등 정체성을 확립하며 1995년 건축계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한국에도 강원 원주시의 뮤지엄 산, 제주의 본태 박물관 등이 있다. 2009년과 2014년에는 암이 발견돼 5개의 장기를 적출하고도 작품활동에 매진하며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파란만장한 삶과 건축처럼 그의 답변에는 삶과 죽음, 돈, 행복 등에 대한 깊은 철학들이 담겨 있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