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한 걸음 물러서는 훈육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인생에서 충동이 가장 심할 때가 두 번 있다. 바로 영유아기와 청소년기이다. 영유아기는 ‘쾌락의 원리’에 지배받는 시기여서 하고 싶으면 해야 하고 갖고 싶으면 가져야 한다. 본능에 충실하고 충동적이기 때문에 싫으면 그냥 울거나 소리를 질러 버린다. 이런 욕구와 충동은 아동기가 되면 잠시 낮아졌다가 사춘기가 되면 다시 올라간다.
그런데 사춘기의 욕구와 충동은 영유아기 때의 본능과는 좀 다르다. 이 시기는 아이가 인생을 독립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연습의 일환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좀 당황스럽겠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청소년기의 정상적이고 당연한 심리 발달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옛것을 허물고 새것을 만들어 부모의 둥지를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기는 공격성도 상당히 늘어나고 충동적인 행동도 많이 한다.
어린아이가 막무가내로 떼를 쓰거나 돌발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확실히 알려 줘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분명하게 알려주되 절대로 화를 내거나 때리지 않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하는 건 너를 교육하기 위한 것이지 너랑 싸우려는 게 아니라는 걸 아이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사춘기 아이를 다룰 때도 똑같다. 아이가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화내지 말고 단호하게 말하되, 폭력은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오해해선 안 되는 게 있다. 감정적으로 욱해서 아이의 반응에 거칠고 강압적인 대응을 하는 것 못지않게 부모가 너무 저자세를 취하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유아기 아이에게 해선 안 되는 행동을 가르칠 때는 분명하게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아이가 부모를 막 때리는데도 부모가 아기 목소리로 존댓말을 하며 “하지 마세요”, “엄마 화낼 거예요” 하면 아이에게 통제권을 빼앗긴다. 친절하게 말해줬으니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아이는 엄마 말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엄마를 때리게 된다. 사춘기 아이를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강하게 나올 때 부모가 더 강하게 나가는 것도 금물이지만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부모를 때리려고 아이가 손을 올렸는데 “이제 눈에 뵈는 게 없구나. 너 죽고 나 죽자” 하거나 겁을 먹고 “너 왜 그래? 엄만 너만 믿고 살았는데, 엄마는 무서워” 하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부모는 일단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좋게 말하렴”이라고 했는데 “내가 지금 좋게 말하게 생겼어? 돈도 안 주면서 뭔 잔소리야”라고 한다면 겁먹거나 화내지 말고 “네가 욕을 한다고 엄마가 주면 안 되는 돈을 주지는 않아” 하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문제는 거기서 끝을 낸다. 계속 대꾸했다가 전쟁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면 “좀 진정하고 얘기하자” 하면서 한발 물러나 주는 게 좋다.
우리는 아이가 화를 내면 비슷한 감정으로 맞받아친다. 아이가 “아, 신경질 나” 하면 “네가 왜 신경질이 나? 네가 돈을 벌어 왔어, 공부를 열심히 했어? 네가 왜 신경질이야?”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반응해서는 아이를 가르칠 수 없다. 아이가 신경질을 내면 “그런 마음으로 무슨 얘기가 되겠니. 엄마는 너랑 꼭 얘기를 해야겠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아. 조금 이따 하자. 일단 좀 진정하고 생각할 시간을 가져 봐” 하면서 한 걸음 물러나 주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아이가 흥분해 있을 때는 부모가 먼저 참고 물러나야 한다. 무조건 져주라는 게 아니다. 물러나서 아이가 그 상황에서 진정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아이가 극단으로 치닫지 않고 자신의 상황을 정리해 볼 수 있다. 아무리 화가 나도 폭발시키지 않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