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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칼럼]준비 없이 맞고 있는 초고령사회

입력 | 2023-01-26 03:00:00

기적적 경제성장에 수명 빠르게 늘어났지만
노년층 빈곤율 45% 육박, 미래 참담할 수도
연금개혁, 세제개선 등 생활보장책 시급하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수부귀다남(壽富貴多男)은 우리 전통사회에서 인간이 지닌 가장 원초적인 욕망이었다. 농업사회에서 다남(多男)은 부(富)를 쌓을 수 있는 길이었고 또 이를 통해 귀(貴)해질 수도 있었다. 이는 초기 산업사회까지도 마찬가지였지만 다남은 이제 별로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 한편 부와 귀는 어느 시대이건 또 어느 사회이건 상대적인 것이므로 결국은 소수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면서 수(壽)는 우리 사회에서 거의 모두가 누리게 된 듯싶다. 엄청난 변화다.

오래 살고자 하는 욕망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중국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도 불로장생을 위해 한반도에까지 사람을 보내 약초를 찾았지만 결국은 49세에 세상을 떠났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장수한 셈이다. 수명은 삶의 여건이 좋아지면 저절로 늘어나므로 소득 수준과 상당히 비례한다. 세계 여러 국가를 살펴보면 개인소득이 1000달러인 나라는 평균 수명이 45세, 5000달러면 65세, 그리고 3만 달러면 80세 정도다. 지난 반세기 만에 소득 1000달러에서 3만 달러 이상으로 기적적 경제 성장을 이룬 대한민국은 따라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수명이 늘고 있는 나라다.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그리고 14% 이상이면 고령사회로 분류하는데, 예를 들어 프랑스는 1865년에 고령화사회에 이르렀다가 1980년이 되어서야 고령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2000년에 고령화사회가 된 대한민국은 2017년에 고령사회에 이르렀다. 프랑스의 115년 변화를 우리는 17년 만에 겪고 있으니 이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사회적 어려움이 훨씬 더 클 것은 당연하다. 2030년이면 대한민국은 노인 인구비율이 25%를 넘을 것이며 이때는 노인 한 명을 2.5명의 생산가능 인구가 부양해야 한다. 2050년에는 1.4명이 노인 한 명을 맡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리보다 먼저 고령화에 들어선 일본은 이미 노인 인구비율이 30%에 이르렀다. 정년을 70세로 늘려 가는 등 우리보다는 착실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령사회에서 발생하는 내부 갈등은 상당히 깊은 모양이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올라왔던 일본 영화 ‘플랜75’는 물론 필름 속의 세상이지만 초고령사회의 깊은 고민을 보여준다. 영화는 한 젊은이가 국가의 어려움을 해결한다며 노인을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후, 젊은이는 일본의 미래가 밝아지기를 바란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뉴스가 이어진다. “고령자 습격 사건이 전국에서 잇따르는 가운데, 나날이 심각해지는 고령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정부에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플랜75에 대해서는 발의부터 극심한 반대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드디어 오늘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세계의 이목을 모으는 이 제도가 일본의 고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7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세상을 뜻대로 하직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제도가 플랜75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권장한다. 영화 속에서는 노인들이 원하는 때에 세상을 떠날 수 있어 너무 좋다는 TV 광고도 나오고, 그로부터 3년 후에는 성과에 고무된 정부가 플랜65를 새로이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이어진다.

이토록 우울한 모습은 물론 영화 속의 이야기지만,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맞이할 초고령사회는 어떤 측면에서 더욱 가혹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대한민국은 노년층 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여러 국가들 중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높은 나라다. OECD 평균은 노년 빈곤율이 15% 정도이나 우리는 그 세 배인 45%에 육박하고 있다. 최소 생활비를 확보하지 못하는 노인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2030년이면 대한민국 노인 인구는 1300만 명을 넘을 텐데, 이대로 가면 결국 수백만 명의 노인들이 빈곤에 허덕이는 참담한 모습이 우리의 미래일 것이다. 노인들의 소득을 확충하기 위한 연금 개혁, 세제 개선 등은 물론 그들의 최저생활 보장을 위한 제반 제도 마련은 하루가 급한 일이다.

초고령사회에 대한 준비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가름하는 일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는 이런 중차대한 업무를 맡은 정부 부서인데, 그러나 여기에서 들리는 최근 소식은 부위원장 해임 처리에 관련된 것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렇게 준비 없이 급속하게 초고령사회를 맞는다면, 우리 사회의 앞날은 암울할 수밖에 없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