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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분배가 개혁과 성장의 연결고리다[동아광장/이지홍]

입력 | 2023-01-27 03:00:00

경제성장률 올해 1%대, 장기 전망도 어두워
생산성 높이려면 혁신 분야에 자원 집중 필요
규제 혁파, 자율성 강화로 국가 역동성 키워야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한국 경제가 올해 1%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망치가 나올 때마다 그 숫자가 작아져서 마이너스 성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한다 해도 전혀 놀랍지 않은 상황이다. 중장기 전망도 어둡다. 내부적으론 인구 구조의 급속한 고령화, 외부적으론 정치 논리가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란 시대적 난제가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2002년에 7.7%, 2011년에 3.7%, 그리고 팬데믹 발발 직전인 2019년에 2.2% 성장을 했다. 가파른 하락세다. 2019년에 미국과 유로존의 성장률은 각각 2.3%와 1.6%였다. 그래도 유럽보단 낫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미국보다 성장률이 낮아졌단 사실이다. 좋든 싫든 미국은 모두가 벤치마킹하는 글로벌 경제의 프런티어다. 미국보다 낮은 성장률은 한국의 국부(國富)가 이제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에 들어선다는 신호인 것이다.

한국이 피땀 흘려 쌓아올린 국력을 지키고 싶다면 어떻게든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성장률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유럽과 일본이 걸어온 길을 보면 그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경고를 쏟아내는 이유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은 그 수명이 다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성장을 하려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같은 자원을 투입해서 더 많은 물자와 서비스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좀 더 좋은 집에서 좀 더 여유로운 삶을 누린다. 그렇다면 생산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한 가지 방법은 국민 개개인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신기술을 습득하는 방법인데 최근 들어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등 전통적으로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던 교육 수준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교육열은 여전히 한국의 상대적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국가 생산성을 높이는 다른 한 방법은 생산성이 높은 집단과 분야에 인적·물적 자원을 최대한 배치하는 것이다. 이런 성장 루트를 ‘재분배(reallocation) 효과’라고 한다. 특히 혁신이 일어나는 쪽으로 인력과 지식과 자본이 신속하고 충분히 흘러가야 하고, 그 경로가 막힐 경우 생산성이 낮은 쪽이 과도하게 자원을 소모하면서 성장이 둔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급 측면에서 자원의 원활한 흐름을 가로막는 한 원인이 승자의 사다리 걷어차기다. 소수 대기업이 혁신과 모험 대신 담합과 정치권 로비에 몰두하며 똘똘한 신생 기업을 죽이고 경쟁과 성장을 정체시킨다는 이론인데, 분명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이고 또 공정거래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미국에서도 정부의 더 강력한 공정거래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생산성 증가폭이 감소했는데 대기업의 시장점유율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산업 집중도가 유달리 심한 한국은 사실 이미 오래전부터 이 같은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었다. ‘상생’과 ‘재벌개혁’이 바로 그 문제의식을 대변하는 정책 노선이다. 약자를 도와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려는 시도에 국민들도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 노선에 대대적인 수정과 보완을 할 때가 된 것 같다. 한국이 처한 환경이 미국과 크게 다르기도 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반(反)시장 정서가 너무도 지나치고 맹목적인 나머지 국가 경제의 혈관과 경맥이 아예 꽉 막혀 버렸기 때문이다. 업종, 직장, 지역, 세대를 불문하고 필요한 곳마다 자원이 흘러가지 않으니 생산성과 소득 격차는 줄지 않고 성장도 안 되는 것이다.

대학에선 매 학기 수강신청 전쟁이 벌어진다. 청년들은 대기업과 수도권을 원하는데 정치인들은 중소기업과 지방이 소멸하면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한다. 그 간극이 점점 더 벌어져서 상생의 수혜자가 대체 누군지 의심이 들 지경이다. 대형마트 영업규제를 소상공인들이 나서서 풀어달라고 하고, 지식재산권이 허술해서 중소기업이 기술을 뺏긴다는데 특허 괴물은 대기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이 총체적 미스매치에 빠져 있다.

따라서 이번 개혁의 목표는 인력, 지식, 자본이 보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사회 곳곳에 길을 터주는 것이어야 한다. 규제를 혁파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고, 학교의 자율과 학생의 선택권을 확대해야 나라에 역동성이 생기고 궁극적으로 소득 분배도 좋아진다. 아울러 연금과 건강보험의 구조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청년들한테 갈 자원을 최대한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인 복지는 정치 포퓰리즘의 악순환에 특히 빠지기 쉽다. 당장 제동을 걸어야 한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