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올해 실업급여 하한액 月185만원… “취직 의욕 꺾는다” 지적

입력 | 2023-01-27 03:00:00

실업급여 하한액 4년 만에 인상
월급 200만원대 실수령액에 근접
수급자격만 채우고 ‘일 그만’ 늘어
전문가 “수급 요건 더 까다로워야”




수도권에서 주유소 4곳을 운영하는 김모 씨(67)는 지난해 직원 16명 가운데 절반가량을 다시 뽑아야 했다. 직원을 새로 뽑으면 8개월에서 1년 정도 지난 뒤 “그만두겠다”고 하는 일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일하면서 월급 230만 원 받기보다 놀면서 실업급여 180만 원 받는 게 낫다”며 “실업급여 수급 자격(180일 근무)만 채우고 그만두려는 이들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직원은 일부러 해고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이를 들어주지 않으면 태업을 하는 식으로 해고를 유도했다. 현행법상 스스로 그만두는 ‘자발적 퇴사’는 실업급여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해 실업급여(구직급여) 하한액이 4년 만에 인상됐다. 월 기준(30일)으로 환산하면 매달 최소 184만7040원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인상되면서 이와 연동되는 실업급여 하한액도 6년 새 32.2% 올랐다.
● 최저임금 인상에 실업급여 하한액 급등

2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실업급여 하루 하한액(8시간 근무 기준)은 6만1568원이다. 실업급여는 직전 평균 임금의 60%를 받지만 저임금 근로자를 배려하기 위해 하한액을 둔다. 정부는 ‘최저임금의 90%’였던 하한액을 2019년 최저임금의 80%로 낮췄다. 2018, 2019년 연속 최저임금이 10% 이상 올랐기 때문이다. 다만 하한액을 기존보다 깎을 수는 없어 2019∼2022년 4년간만 한시적으로 하한액을 6만120원으로 동결했다.

하한액이 2017년 월 139만7520원에서 2019년 월 180만3600원으로 오른 뒤 실업급여를 반복적으로 타는 ‘실업급여 의존자’가 늘었다. 월급이 200만 원대 초반인 영세 기업에서는 4대 보험료 등을 뺀 실수령액과 실업급여 간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실업급여는 실직 전 18개월 중 180일 이상 고용보험에 가입한 뒤 ‘비자발적’으로 퇴사해야 받을 수 있다.

올해 4년 만에 실업급여가 오르면서 의존자들이 더 늘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급 횟수 제한이 없다 보니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23년 연속 매년 실업급여를 타낸 사람도 있다. 2016년 기준으로 직전 5년 동안 3차례 이상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7만7000명이었다. 2021년에는 10만1000명으로 늘었다. 실업급여는 최대 9개월(270일)까지 받을 수 있다.

스스로 일을 그만둔 사람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지만 사업주에게 ‘비자발적’ 퇴사로 처리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악용의 소지도 있다. 수급 기간에 면접을 보는 등 구직 활동을 해야 하지만 형식적으로만 하는 척해서 서류를 꾸며 수급 자격을 인정받는 것도 어렵지 않다.
● 현장 “실업급여 타려 일 그만둬… 개선 필요”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소상공인, 중소기업계는 실업급여 때문에 구인 활동이 더 힘들다고 하소연한다. 서정헌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실장은 “실업급여 금액이 크고 횟수 제한도 없어 근로 의욕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현장의 불만이 많다”며 “어렵게 직원을 뽑아도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이 잦아 인력난이 더 심해진다”고 설명했다. 중기중앙회는 실업급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수차례 건의했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급여 수급자는 163만1270명이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직장에서 해고당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 차원에서 실업급여는 필요한 제도로 꼽힌다. 다만 전문가들은 ‘하한액-최저임금 연동’ 방식 등 현재의 시스템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유길상 한국기술교육대 명예교수는 “실업자 생계 안정은 보장하되 수급 요건과 재취업 활동 인정을 더 까다롭게 만들어서 정말 필요한 사람만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고용보험위원회 내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 상반기(1∼6월) 중 개선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