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메타)을 시작으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그리고 믿었던 구글(알파벳)까지. ‘꿈의 직장’으로 불리던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대규모 정리해고를 발표했습니다. 수만 명이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서 하루 아침에 해고되고 일자리를 잃게 되다니. 과거 한국 외환위기 시절 기억이 생생한 저로서는 ‘정리해고’라는 단어가 너무 무시무시하게 들리는데요.
그런데 웬걸. 미국의 분위기는 좀 다릅니다. 정리해고가 직원 개개인에게 너무나 큰일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은 아니랄까요. 오히려 ‘아직 파티가 끝난 건 아니야’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왜 그런지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이 기사는 1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직접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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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고 대상자로 선정되면 바로 짐을 싸서 사원증을 반납하고 회사를 떠나는 게 미국식 정리해고. 게티이미지
새해 들어 5.9만명 정리해고
32세인 에린 섬너는 메타(페이스북의 모회사)의 소프트웨어 채용 담당자였습니다. 구직자들에게 회사의 강점을 홍보하는 게 그의 역할이었죠. 지난해 정리해고 소문이 돌 때도 그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에게 ‘회사가 은행에 쌓아둔 현금이 400억 달러’라며 안심하라고 했죠. 하지만 그는 지난해 11월 해고된 1만1000명 중 하나였습니다. 뉴욕타임즈가 소개한 정리해고자의 이야기입니다. 고연봉은 기본이고, 현대적 사무실 공간에 무료 통근셔틀과 무료 점심∙저녁식사, 세탁 같은 서비스까지 제공하던 꿈의 직장. 젊은 엔지니어들에게 빅테크는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계속될 것만 같던 그 세계가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빅테크에 닥친 정리해고 물결과 함께 말이죠.
마이크로소프트의 레드먼드 캠퍼스 모습. 저들은 아직도 MS에서 일하고 있을까. MS 홈페이지
구글(알파벳):1만2000명 감원
지난 20일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직원 1만2000명을 해고할 거라고 밝혔습니다. 전체 직원(18만6779명)의 약 6%에 해당하죠. 창사 이래 최대 규모입니다. 사실 지난해 11월부터 구글 직원들이 정리해고를 걱정한다는 보도는 나왔는데요. 결국 현실화된 겁니다. 구글은 해고된 직원에게 6개월의 건강 보험과 유급 휴가, 2022년 보너스와 16주 급여를 제공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MS):1만명 감원
페이스북 본사의 내부 모습. 페이스북은 지난해 11월 전체 직원의 13%를 정리해고 했다. 페이스북 홈페이지
이달 초 아마존은 주로 1만8000명 이상의 직원을 해고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28년 역사상 가장 큰 인력 감축인데요. 아마존 전체 직원수(154만명)의 1%가 조금 넘는 규모입니다. 앤디 제시 CEO는 정리해고가 주로 인사와 매장 부문 직원들에게 영향을 미칠 거라고 밝혔습니다.
메타(페이스북) : 1만1000명 감원
메타는 빅테크 중에선 상당히 일찍, 지난해 11월에 1만1000명 해고를 발표했죠. 전체 직원(8만5000명)의 13%가 해고된 겁니다. 메타가 창립한 지 18년 만의 첫 정리해고였죠.
세일즈포스:8000명 감원
분기별 테크기업의 정리해고 규모. 빨간색 막대가 정리해고자 숫자이다. 2023년 1분기는 아직 한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5만9000명에 달한다. 자료 Layoffs.fyi
경기 탓? 정리해고의 진짜 이유
그런데 빅테크들이 왜 이렇게 정리해고를 한꺼번에 몰아치듯 대규모로 할까요. 경영진들은 이런식으로 설명합니다. ‘팬데믹으로 급증했던 IT 관련 수요가 계속될 줄로만 알고 그때 사람을 너무 많이 뽑았던 게 실수였다. 그걸 다시 되돌리려고 한다.’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지고 외부환경이 달라지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구글 피차이 CEO도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과거와 전혀 다른 경제 현실에 직면했다”고 정리해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설득력 없는 얘기는 아닙니다. 실제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말과 비교하면 빅테크 직원 수는 급증했죠. 아마존 직원 수는 2019년 말 이후 2배로 급증했고요, 메타 94%, 세일즈포스 63%, 알파벳 57%, 마이크로소프트 53% 늘었습니다. 너무 빠르게 몸집이 키웠던 걸 이제라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을 수도 있죠.
구글 뉴욕 사옥의 모습. 구글 홈페이지
FT는 그 근거로 최근 10년 간의 빅테크 기업의 직원 수 추이를 제시했는데요. 흔히들 ‘팬데믹 때 기술기업이 채용을 갑자기 늘렸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지난 10년 동안 채용은 비슷한 속도로 증가해왔습니다. 팬데믹과 상관없이 그 전부터 많이씩 뽑았던 거죠. 늘 그랬으면서 이제 와서 갑자기 ‘코로나 탓’을 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동의하시나요? 제프리 페퍼(Jeffrey Pfeffer) 스탠포드 경영대학원 교수 역시 빅테크의 정리해고 바람에 매우 부정적인데요. 그는 “기업들이 정리해고를 하는 건 필요해서가 아니라 다른 기업이 하는 일을 모방하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기업 다 하는데 왜 우린 안해?’라는 비합리적인 이유로 정리해고가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일종의 ‘사회적 전염’이죠.
인적관리 전문가인 페퍼 교수는 “정리해고는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지도, 비용을 절감하지도 못하는 나쁜 결정”이라고 보는데요(나중에 그 인력을 다시 채용하려면 비용이 더 듬). 정리해고는 ‘말 그대로 사람을 죽이기’ 때문에(자살확률 2.5배 증가) 기업이 정말 어렵다면 인력의 10%를 해고하는 대신 모든 직원의 임금을 10% 삭감하는 게 낫다고 주장합니다.
‘꿈의 회사’ 떠난 이후엔?
식물원이 있는 미국 시애틀 아마존 본사의 모습. 아마존 홈페이지
그렇다고 빅테크에서 해고된 엔지니어들이 당장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진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여전히 기술인력을 채용하려는 기업들이 줄을 섰기 때문이죠. 다만 예전과 다른 게 있다면 그들에게 익숙한 실리콘밸리의 IT기업은 아니란 겁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보험과 은행, 의료, 소매 부문의 기업에서 특히 엔지니어를 채용하려는 수요가 많습니다. 이런 회사도 기술 인재가 매우 필요합니다. 이제 모든 회사가 기술회사인 세상이니까요.
이와 관련해 미시간 지역 언론에 보도된 기사가 인상적인데요. 빅테크의 해고 물결로 드디어 미시간주 기업에도 엔지니어들을 유치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는 내용입니다. 미시간은 전기차와 배터리 제조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지역이지요. 물론 과연 캘리포니아의 엔지니어들이 선뜻 미시간까지 갈까 싶은데요. 그래서 기사에서도 인재 유치의 관건이 원격근로 허용과 임금 수준일 거라고 분석했습니다.
인력데이터 업체 레벨리오에 따르면 지난해 해고된 근로자의 70% 이상이 3개월 이내에 새 일자리를 찾았고, 절반 이상이 전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직장을 구했다고 합니다. 특히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다음 일자리를 금방 찾는 직업군으로 나타났죠. 해고된 이들에게는 다행스런 소식입니다. 다소 과장된 표현을 인용해 설명하자면 “타이트한 노동시장에서 해고되는 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집리크루터의 줄리아 폴락 이코노미스트)이 될 수도 있겠죠.
‘적어도 지금은 여전히 파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마 예전처럼 퇴폐적이진 않겠지만.’ 블룸버그가 지금의 빅테크 정리해고 물결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이 붕괴했던 시절(그땐 정말 실업자가 넘쳐나고 ‘파티가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과는 많이 다르다는 거죠.
해고 당하면 감사 글을 남겨라?
방금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그럼 얼른 링크드인에 감사의 작별 메시지를 남겨라. 게티이미지
인도 출신으로 뉴욕의 빅테크에서 일했던 개발자 싱은 지난해 말 해고됐습니다.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회사의 정리해고 방식에 크게 좌절했다고 합니다. 해고 절차가 너무 갑작스럽고, 불공평했고, 메시지 전달 방식이 끔찍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는 해고 통보를 받자마자 다른 수천 명의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링크드인에 접속해 포스트를 남겼습니다. 자신의 여정은 너무 일찍 끝나서 아쉽지만 원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내용이었죠. 사원증 사진과 함께 글을 마무리했고요. 이 게시물엔 다른 동료들의 지지 댓글이 줄지어 달렸습니다.
왜 자신을 냉정하게 자른 회사에 고맙다는 글을 남기냐고요? BBC는 이를 ‘근로자의 고용 가능성과 조직 적응력을 드러내주는 중요한 기능을 제공하는 전략적 메시지’라고 설명합니다. (실제론 그렇지 않더라도)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유능한 직원인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도 구직 중이란 사실을 널리 알리는 효과가 있는 거죠. 소셜미디어를 똑똑하게 이용하는 겁니다.
실제 싱의 이 전략은 상당히 효과가 있어서 구직 제안이 줄 잇고 있다는데요. “소셜미디어에 누군가에 대해 부정적인 글을 쓰는 것에는 긍정적인 면이 없습니다. 절대 다리를 태우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직을 생각하는 분이라면 싱의 조언을 명심해 두셔야 겠습니다. By. 딥다이브‘자고 일어났더니 업무 프로그램에 접속이 안 된다’, ‘출근해서 카드키를 댔는데 빨간불이 켜지며 문이 안 열린다’. 최근 나오는 미국 빅테크의 정리해고 스토리를 보면 냉정하다 못해 무섭기까지 합니다. 동시에 정리해고 소식에 주가가 급등했다는 뉴스를 보면 씁쓸하고요. 정리해고 결정이 ‘사회적 전염’의 결과라는 분석을 접하고 나서 보니 더 그런데요. 빅테크 정리해고와 관련한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빅테크 정리해고 바람이 새해에도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에 이어 믿었던 구글마저 사상 최대규모의 정리해고를 발표했습니다.
-왜 이렇게 정리해고가 이어질까요. 빅테크들은 팬데믹 때 초과고용이 있었고, 경기침체에 대비해 이제 이를 다시 되돌리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그건 핑계일 뿐이라는 비판도 나오죠. 주가가 떨어지자 투자자들을 달래려 정리해고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단순히 '다른 기업이 다 하니까' 정리해고를 한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업자가 넘쳐나거나 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여전히 기술인력을 채용하려는 기업은 줄을 섰으니까요. '꿈의 직장'을 떠난다고 해서 파티가 끝나는 건 아닌 듯.
*이 기사는 1월 2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직접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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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