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어린이 그림책 ‘걱정은 걱정 말아요’ 의 주인공 루비에게 어느 날 불쑥 ‘걱정’이 찾아온다. 처음 루비 앞에 등장한 걱정은 작은 노란색 먼지 뭉치같이 보였다. 그런데 걱정은 점점 몸집이 커지더니 어느덧 집채만큼 커져 루비를 따라다녔다. 친구들에게는 루비의 걱정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루비도 걱정이 없는 척, 아무렇지 않은 척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거대해진 걱정에 모든 신경을 빼앗긴 루비의 눈에는 걱정 외엔 다른 세상이 모두 회색빛으로만 보인다.
어린이책 ‘걱정은 걱정 말아요’의 주인공 루비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걱정’에 주의를 빼앗겨 주변의 모든 사물이 회색으로 보인다. 외면하려고 해도 자꾸만 덩치가 커져 우리의 생각을 비집고 들어오는 걱정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 두레출판사
걱정 10개 중 9개는 ‘가짜 걱정’
일부 걱정은 앞날을 미리 대비할 수 있게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걱정의 대부분이 쓸 데없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심리학과의 루카스 라프레니에르, 미셸 뉴먼 교수는 2019년 ‘걱정의 기만 폭로: 범불안장애 치료에서 가짜 걱정의 비율’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범불안장애가 있는 대학생 참가자 29명에게 10일 동안 어떤 걱정을 얼마나 했는지 기록하게 했다. 참가자들은 오전 8시부터 오후 9시까지 2, 3시간 단위로 걱정의 내용과 걱정에 할애한 시간 등을 꼼꼼히 적었다. 10일 동안 1인당 평균 34개의 걱정 목록이 나왔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심리학과 연구팀의 실험 참가자들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평균적으로 일과 시간의 25%를 걱정으로 보낸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들의 걱정의 8.6%만이 실제로 현실에서 일어났고, 나머지는 헛된 걱정에 불과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연구팀은 “범불안장애를 앓는 이들을 치료할 때는 걱정이 비현실적이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며 “걱정에 대한 실제 결과를 스스로 추적해 본다면 생활의 적응력을 높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각하지 마!” 틀어막을수록 더 생각나는 이유
걱정이 대부분 쓸 데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걱정을 줄일 일만 남았다. 그런데 걱정을 없애기 위해 애쓴다고 정말 걱정이 사라질까?“백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역설적으로 백곰이 더욱 잘 떠오르는 것은 사고를 억압하려는 노력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동아일보 DB
백곰을 생각하지 말라고 억압한 B그룹이었다. 이를 두고 특정 생각을 억눌렀을 때 역설적으로 자꾸 떠오르게 되는 백곰 효과, 또는 ‘사고 억제의 역설적 효과’라고도 한다. 백곰을 제외한 다른 생각을 떠올리기 위해 “백곰 말고”를 되뇌면서 역설적으로 백곰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원리다. 이처럼 특정 걱정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할수록 마음속을 비집고 나오기 쉽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걱정에 집중하기
전문가들은 만성 걱정을 다루려면 오히려 걱정에 완전히 몰입하라고 조언한다. 공포 영화를 반복해서 보면 무서운 장면도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듯이 걱정과 불안 거리를 거듭 직면해 아무것도 아닌 듯 만들라는 것이다. 아래는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걱정과 불안을 달래는 접근법이다. 걱정에 맞서는 팁(tip)걱정에 맞서는 팁(tip)·걱정되는 일들을 리스트로 작성하기·하루 2회 이상 10분 동안 걱정에 집중하는 ‘걱정 타임’ 만들기(잠들기 전 시간은 피하기)
·걱정 일기를 작성해 걱정이 실제로 현실화했는지 점검하기
·두통, 근육통이 유발될 땐 하던 일 멈추고 심호흡하기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대처 행동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천하기우선 걱정 리스트를 만든다. 직장, 가정, 경제 문제 등 여러 카테고리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더 좋다. 미국의 임상심리학자이자 ‘걱정이 많은 사람을 위한 심리학 수업’ 저자인 채드 르쥔느 박사는 “지나치게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걱정을 분류하는 과정만으로 고통이 경감되는 효과를 경험하기도 한다”며 “걱정을 분류하다 보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생각들로부터 거리감이 생겨나 생각과 자기 자신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걱정일기를 쓰는 것도 많은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법이다. 걱정의 내용을 제목으로 쓴 다음 △걱정이 현실화 됐는지 △현실화 됐다면 개선할 수 있는 일인지 △어떤 대처를 할 수 있는지 △그로 인해 무엇을 (못)하게 됐는지 △신체적 느낌은 어떤지(두통이나 근육 경직 등) △어떤 감정이 뒤따랐는지 등에 관해 쓰는 것이다.
이 모든 방법의 핵심은 걱정을 틀어막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 대부분의 걱정은 ‘만약 ~하면 어떡하지?’로 시작해 불확실한 미래의 일을 통제하려는 노력 때문에 생겨나는데, 걱정을 통해 미래의 모든 일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르쥔느 박사는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불확실한 요소를 참아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미래의 불확실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현재에 필요한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욕구를 버리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했다.
최고야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