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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MoMA, 200년 데이터 학습한 ‘AI 예술’ 작품성 인정[글로벌 포커스]

입력 | 2023-01-28 03:00:00

“사람 수준의 콘텐츠 만들겠다”… ‘생성AI’ 사회 곳곳서 파장
AI가 그린 그림이 미술전서 수상, 챗GPT 글쓰기에 일선 학교 비상
“웬만한 교수보다 수준 더 높다”… 현직 교사 ‘영어 수업 종말’ 선언
올해 인간 수준 업그레이드 예고, 가짜 뉴스 대량 생산할 우려도




지난해 11월 구글이 뉴욕 본사에서 개최한 행사 ‘AI@’에서 로봇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이를 스스로 코딩해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모습. 구글 초대형 언어 모델인 ‘PaLM’을 적용한 이 로봇은 “컵을 쌓아라”와 같은 명령을 말로만 듣고 수행한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모마) 1층 로비. 커다란 벽면에 설치된 높이 약 8m짜리 발광다이오드(LED) 디스플레이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변화무쌍한 3차원 영상이 눈을 사로잡았다. 추상화가 살아 움직이듯 끊임없이 색과 모양을 바꾸자 관람객들은 연신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스크린 앞 의자에 앉아 20분 넘게 지켜보는 이도 있었다.

요즘 모마에서 단연 화제인 이 작품은 인공지능(AI) 아티스트 1세대로 불리는 튀르키예 작가 레피크 아나돌(38)의 ‘비(非)지도(Unsupervised)’다. 그가 활용하는 AI는 모마가 보유한 200여 년 근현대 작품 데이터를 학습한 뒤 작품 색깔과 형태를 스스로 재해석하며 시시각각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모마 측은 “기계가 현대 미술사를 탐험하며 어떤 꿈을 꾸는지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 뜨거운 ‘생성AI’, 일상에 파고들다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1층 로비에 설치된 인공지능(AI) 아트 작품 ‘비지도(Unsupervised)’. AI가 200여 년간 축적된 미술관의 현대미술 데이터를 재해석하고 여기에 날씨, 관람객 움직임과 소리도 받아들여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3차원 영상을 쉼 없이 재생한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비지도 옆 벽에는 작품 설명과 더불어 AI의 ‘생각’을 실시간 들여다볼 수 있는 코딩 작업 화면이 떠 있다. ‘이 작품이 스크린세이버와 뭐가 다를까’ 생각하던 찰나 코딩 화면에 뉴욕 날씨 정보가 빠르게 입력되더니 놀라운 이미지가 재현됐다. 미술관 밖에서 눈이 내릴 듯 바람이 거세지자 화면 속 컬러 물결은 밖으로 튀어나올 듯 요동쳤다. 탄성이 터져 나왔다.

세계 현대미술 성지(聖地) 모마가 AI 예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 자체가 역사적 순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모마 창립자는 사진이 예술 작품일 수 있는지 논쟁하던 시기에 남보다 앞서 사진을 작품으로 전시했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관람객이 급감한 미술관들이 과거처럼 기술을 받아들이며 동시대와 호흡하려 한다”고 전했다.

2022년은 단연 AI의 해였다. 미국에서 열린 한 미술전에서는 AI가 그린 그림이 디지털 아트 부문 우승을 차지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2023년에도 AI를 둘러싼 ‘빅테크’ 기업 간 경쟁이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까지 그 주인공은 챗봇 ‘챗GPT’다. 지난해 11월 30일 개발업체 오픈AI가 공개한 지 5일 만에 사용자 100만 명을 돌파했다. 사용자 100만 명 돌파까지 인스타그램이 2.5개월, 페이스북이 10개월, 넷플릭스가 41개월 걸린 것과 비교하면 놀랍다. 검색엔진 구글이나 아이폰이 등장했을 때에 버금간다.

챗GPT 능력은 글쓰기다. 셰익스피어 문체로 쓰라고 하면 그대로 쓴다. 시와 소설, 가사도 만들어 준다. 물론 수학 문제도 풀어주고 코딩도 ‘척척’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챗GPT가 쓴 자기소개서, 엔지니어 입사시험 풀이 같은 각종 실험 스토리가 넘쳐난다.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의 한 교수는 챗GPT에 기말시험을 치르게 했더니 B 또는 B― 학점을 받았다고 밝혔다.

아나돌의 작품처럼 데이터를 토대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거나 챗GPT처럼 글을 써주는 AI를 생성AI(Generative AI)라고 한다. 생성AI가 무엇인지 챗GPT의 설명을 들어보자.

“생성AI는 새롭고 독특한 콘텐츠 생성에 사용되는 AI입니다. 이미지 텍스트 음악 비디오가 포함될 수 있습니다. 목표는 사람이 만든 것과 구별할 수 없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입니다.”

AI는 이미 빅데이터를 분석해 날씨 예보 정확도를 높이는 등 알게 모르게 산업계를 비롯해 일상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반면 생성AI는 인간 창의력에 도전한다. 글로 적으면 이미지를 뚝딱 만들어 주는 이미지 생성AI 돌풍이 최근 1, 2년간 불었다면 챗GPT는 글쓰기 창작 능력에 도전하며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 화가 작가 교사가 위협받는다?
챗GPT는 오픈AI 언어생성모델 GPT(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3.5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오픈AI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실리콘밸리 벤처투자사 Y콤비네이터 샘 올트먼 CEO 등이 만든 AI 연구단체다.

챗GPT가 사람처럼 글을 쓸 수 있는 이유는 매개변수(parameters)를 약 1750억 개 갖춘 딥러닝 기술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매개변수는 사람 뇌에서 뉴런을 이어주는 정보 전달망 시냅스와 비슷한 역할로 많을수록 지능이 높다. 챗GPT에 매개변수를 설명하라고 하자 “1750억 개의 다른 방식으로 패턴을 익힌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사람 시냅스는 100조 개에 달한다.

엄청난 컴퓨팅 능력과 빅데이터를 탑재한 챗GPT는 공개 직후 미 교육계를 발칵 뒤집어 놨다. 기말고사 기간인 연말에 등장해 학교마다 챗GPT가 쓴 보고서를 잡아내느라 몸살을 앓았다.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시는 최근 공립학교 컴퓨터에서 챗GPT 접근을 봉쇄했다.

챗GPT가 일으킬 파괴적 혁신 규모가 상당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챗GPT가 검색엔진뿐 아니라 교사 교수 기자 작가 등 ‘글 쓰는 직업’을 없앨 것이란 우려가 확산되는 것이다.

12년 경력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주간지 디애틀랜틱에 ‘고등학교 영어 수업의 종말’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는 “제자들에게 사과한다. 웬만한 교사나 교수보다 챗GPT가 글을 더 잘 쓴다”며 “학생이 쓴 에세이 초안을 챗GPT에 맡겼더니 학생 문체는 유지하되 더 우아하게 글을 바꿔 놨다”고 전했다. 그는 교사 역할에 대한 실존적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폰이 백과사전 카메라 내비게이션 역할을 빼앗았듯 챗GPT는 많은 직업을 ‘정말로’ 뒤흔들 수 있다. 이미지 생성AI도 아티스트 역할에 의문을 갖게 한다. 생성AI 작품의 주인은 사람일까, 기계일까.

작가 아나돌은 모마 인터뷰에서 “예술은 인간의 상상력을 반영해야 한다”며 “작가는 AI의 특정 매개변수를 훈련시키는데 이는 작가의 창의성이 반영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관람객은 생성AI가 만드는 새로운 이미지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사람이 생성AI를 다룬다는 점에서 작품 주체는 사람이며 관람객은 기존과는 다른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새로운 예술이라는 의미다.

챗GPT 같은 텍스트 생성AI가 사람을 돕는 역할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에릭 브리뇰프슨 스탠퍼드대 교수 겸 디지털경제연구실 책임자는 생성AI를 계산기 같은 존재라고 규정한다. 연산을 잘한다고 계산기가 수학자는 아니듯 생성AI는 이미지 디자인과 글쓰기를 도와줄 뿐이라는 얘기다.

브리뇰프슨 교수는 최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AI는 사람을 대체하지 않는다”며 “다만 AI를 쓸 줄 아는 사람이 쓸 줄 모르는 사람의 일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에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학생이 챗GPT를 활용해 성과를 높인 사례도 얘기했다. 자신의 연구계획서를 챗GPT에 맡겨 세련된 영어로 요약하게 했다는 것이다. 연구 아이디어는 학생 것이지만 챗GPT는 이를 요약, 표현해 줬다.

미국의 인터넷 뉴스매체 및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버즈피드는 오픈AI와 손잡고 챗GPT를 콘텐츠 개발에 활용하기로 했다. 언어나 이미지 생성AI를 이용해 애니메이션 등 새로운 콘텐츠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나 페레티 버즈피드 CEO는 다만 “여전히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것은 사람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 마이크로소프트 vs 구글
올해 생성AI는 더 똑똑해지고 빅테크 간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챗GPT는 올해 안에 GPT-4 기반으로 업그레이드된다. GPT-4는 인간 시냅스 수(100조 개)만큼의 매개변수를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챗GPT 뒤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있다. 오픈AI는 주요 연구 자산을 공개한다는 정신으로 실리콘밸리 천재들이 설립했지만 사실상 MS가 지배하고 있다. 머스크는 테슬라에서도 AI를 연구하고 있어 이해 충돌 여지가 있다며 오픈AI에서 나왔다. MS는 최근 100억 달러 추가 투자 계획을 밝히며 자사 클라우드 서비스 ‘애저’에 챗GPT를 접목하겠다고 설명했다. 1만 명을 감원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면서도 AI 투자는 놓치지 않겠다는 심산이다.

오픈AI의 AI 개발에 관여하기도 했던 구글에도 이목이 쏠린다. NYT는 챗GPT가 나온 이후 구글에 비상이 걸렸다고 보도했다. 검색엔진의 미래가 위험하다고 본 것이다. 현업을 떠난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도 최근 회사를 찾아 모회사 알파벳 경영진과 AI 전략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은 자사 챗GPT 격인 언어생성모델 ‘람다(LaMDA)’ 모델을 공개하고 있지 않아 현재 개발 수준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다. 챗GPT에 람다와의 차이를 물으면 “람다는 비슷한 모델이지만 매개변수 사이즈가 너무 작다”며 깎아내린다.

구글은 람다가 자칫 인종차별 같은 온라인상의 거친 언어를 그대로 노출하면 회사 명성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고 주로 내부에서만 공유한다. 지난해 11월 구글은 뉴욕에서 열린 AI 행사에서 진화된 람다를 공개했다. 기자가 요정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를 지어 보라고 하면 장편 소설을 써나가는 등 람다의 능력도 상당했다. 구글도 올 5월 람다의 진화된 버전을 공개할 예정이라 MS와 구글의 ‘정면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생성AI의 한계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챗GPT에 26일(현지 시간) 발표된 미국의 지난해 4분기(10∼12월) 경제성장률 기사를 써보라고 했다. ‘200자 안으로, 경기침체 우려 속에 미국 4분기 GDP 성장률이 2.9%를 기록했다’는 정보를 줬더니 정확하게 200자 안으로 기사를 써냈다. 글로 보면 완벽한 기승전결을 갖췄지만 팩트는 거의 틀렸다. 

챗GPT는 온라인에 연결돼 있지 않고 2021년 이전 데이터만 보유하고 있어 불확실한 정보가 많다. 확신에 가득 차 문장을 쓰지만 틀린 정보가 많아 가짜뉴스의 진원지가 될 우려도 크다.

실제로 ‘캐리와 미스터 빅이 언제 처음 헤어졌는지’ 묻자 챗GPT는 기자가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알아챘지만 “캐리와 빅은 시즌 3에서 처음 헤어진 후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시즌 6 마지막 회에서 헤어졌다”고 답했다. 이 드라마 팬이라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답변인지 금방 알 수 있다. 게다가 영어는 잘하지만 한국어는 맞춤법이 틀리는 것은 물론이고 답변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공자와 맹자 차이를 물었더니 공자가 누구인지 끝내 맞히지 못했다.

이미지 생성AI는 저작권 문제로 각종 소송이 걸려 있다. 사진 4억7000만 장을 보유한 게티이미지는 최근 이미지 생성AI 기업 스태빌리티AI가 저작권을 도용해 자사 데이터를 무단 사용하고 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챗GPT도 자신의 한계는 잘 알고 있는 듯했다.

“AI는 창의성, 상식, 감정, 사회적 기술을 포함하는 작업에서는 여전히 (능력이) 부족하다. 인간은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며 타인과 공감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독특한 능력이 있다. 또한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며 적응하고 즉흥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 AI가 계속 발전함에 따라 인간다운 업무를 더 많이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지만 인간의 경험과 사고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