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생 2막]‘우리동네좋은사람들’ 김종훈 대표… 도움 필요할 때 무조건 시설 입주? 돌봄 뒷받침되면 집-동네도 가능… 고령자 주거환경 개선사업 눈떠 욕실 안전바-동선 효율화 등 중점… 강남구 마을공동체 주민공모 도전 20년 근무 중견기업 중역 그만두고, 나이 50에 ‘좋은사람들’ 찾아나서
지난해 12월 27일 한국주거복지문화대상 최우수상 시상식에 참석한 멤버들. 평일 근무시간이라 많은 멤버가 참석하지 못했다. 왼쪽 아래부터 시계방향으로 아마존에서 일하는 황민선 매니저, 김종훈 대표, 한태종 한성자동차 부장, 건축가 신수진 씨.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새해 3일 저녁 강남구 선릉역에 자리한 공유 오피스. 20대에서 60대까지의 남녀 10여 명이 모여 들었다. ‘우리동네좋은사람들’(대표 김종훈)의 신년 모임이다. 이날은 지난해 12월 27일 몇몇 멤버가 대표로 수상한 한국주거복지문화대상 최우수상 시상식 보고대회도 겸했다. 모임은 한국IBM을 퇴직한 김종훈 씨(50)가 지난해 봄 만들었다. 멤버 11명은 모두 강남구에서 살거나 일하는 사람들이다. 퇴근 후 서로의 빈 사무실에서 ‘고령자 주거 환경 개선 사업’을 주제로 하는 정기 도시락 모임을 가졌다. 멤버들은 연령대도, 직업도 다양하다. 대학 동창인 건축가 신수진 씨는 처음부터 모임에 초대된 경우다. 김 대표가 사무실 임대를 알아보다가 친해진 20대의 공유오피스 회사 직원, 외제차 매장에서 마주친 30대 판매 부장, 시니어타운 실습에서 그를 감동시킨 60대 요양보호사, 여기에 강남구청이 지정해준 50대의 일본인 마을활동가 미야자키 다다시 씨도 있다.
―픽업의 기준이 뭔가요.
“‘좋은 사람’이냐 여부입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겪어 보면 알 수 있어요. 어르신들을 모셔야 하니 그냥 일 잘하는 사람 말고, 좋은 사람이어야 해요.”
●화두는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
‘우리동네좋은사람들’이 처음 모인 날. 간단한 맥주 회식을 했다. 김종훈 씨 제공
―만 48세에 퇴직을 결심한 이유는?
“늦기 전에 2막을 준비하기 위해서죠. 입사 20주년이 되던 해 ‘다음 20년을 준비하라’고 마음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어요. 적어도 20년은 더 일할 곳이 필요한데, 더 늦어지면 시작하기 어려워질 것 같았죠. 아내에게 3년간 준비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선언했습니다. 20년 일할 준비에 3년 정도는 투자해야죠.”
그가 그리는 인생 2막은 한국의 초고령사회 문제에 대응하고 시니어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삶이다. 특히 ‘살던 곳에서 나이 들기(aging in place)’를 돕는 마을공동체 만들기에 꽂혀 있다. 지난 2년간 준비를 위해 참 바쁘게 살았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평생교육원을 통해 행정학사에 도전했다. 다가오는 2월에 졸업한다. 서울대 웰에이징 시니어산업 최고위과정도 이수했다. 동시에 ‘우리동네좋은사람들’을 만들어 강남구의 마을공동체사업 주민공모에 도전했다.
“3월에 제안서 내고 심사 과정을 거쳐 6월에 강남구청과 협약을 체결했어요. 구청은 사업비 500만 원과 일본인 마을공동체 전문가를 지원해 줬습니다. 타인에게 대문을 열어줘야 하는 가구 방문의 특성상 ‘관(官·구청)’이라는 배경은 큰 도움이 됐습니다.”
●‘초고령사회’, 우리 동네에도 곧 닥칠 이슈
나이가 들면 꼭 이사를 가야 하나? “지난 2년간 관련 공부를 하거나 전문가들을 만나면서 느낀 겁니다.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무료에 가깝거나 아주 싼 표준화된 공공 서비스는 저소득 취약계층 위주로만 돼 있어요. 그 밖의 분들은 ‘알아서 하겠지’라는 방치 속에 오히려 소외돼 있는 것 같아요. 또 노인이 겪는 여러 불편이나 필요한 지식을, 당사자들도 그 자식 세대인 저희도 너무 모르고 있더라고요.”
예컨대 아들이 바꿔준 최신 휴대전화 탓에 과거 사용하던 기능을 쓸 수 없게 돼 울먹이던 시니어타운의 할머니, 침대에서 내려올 때 상체를 따라가지 못하는 하체 때문에 낙상 사고가 많은 현실 등 돈이 많고 적음과 별개로 모든 시니어가 유의해야 할 일들은 넘쳐난다.
“고령자 낙상 사고가 가장 많은 곳은 뜻밖에도 침실입니다. 욕실이 아니에요. 고령자의 안전, 편의 이런 것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너무 없더라고요.”
지난해 8월 3주간 강남구의 2개 아파트단지 총 3807가구를 대상으로 주거 환경 개선 사업에 참여할 신청자를 모집했다. 최종적으로 38가구가 신청했다. 고령자 가정을 방문해 할 일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낙상 위험 방지. 미끄럼 위험 요소를 진단하고 조치를 통해 낙상 위험을 줄인다. 둘째, 가구 가전 등의 재배치를 통한 동선 효율화. 셋째, 불필요한 물품의 재활용, 기부 및 폐기를 통한 사회공헌. 이를 위해 ①사전 진단 방문(개인별 행동 관찰 및 인터뷰)→②개선 방안 협의→③외부 전문가 자문→④가구별 솔루션 선정→⑤국내외 우수 제품 리서치→⑥구매→⑦사전 설치 및 사용성 테스트를 꼼꼼히 거쳤다.
●“별거 있나, 살던 곳이니 계속 사는 거지….”
“고령자의 집은 고가 아파트라도 내부는 옛날 그대로인 경우가 많아요. 왜 여기서 사시느냐고 여쭈면 ‘내 집이니까’, ‘살던 곳이니까’라고 답합니다.”“부인을 여의고 혼자 사는 78세 어르신은 냉장고 정리를 부탁했어요. 부인이 사망한 후 몇 년간 한 번도 손 대지 않았다며. 모든 끼니는 밖에서 해결하고 자녀들도 집안에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고령자 침대에 설치한 안전바. 고령자가 침대에서 내려올 때 낙상 사고를 방지해 준다(위 사진). 욕실에 미끄럼 방지 매트, 안전바, 샤워 의자를 설치한 모습. 김종훈 씨 제공
침대와 욕조에 안전바를 설치받은 69세 어르신은 “3개월 전 욕조에서 넘어져 슬개골 골절로 수술을 해야 했다”며 “좀 더 빨리 만났더라면 다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몇 차례의 방문을 마무리하던 날 그녀는 “낙상 사고 이후 생활이 집과 병원만으로 바뀌어 우울증이 왔는데 여러분 덕분에 힐링이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인생 2막 준비에 3년 투자, “마음은 급하지만….”
요즘 그는 약간 속도를 내고 있다. 부인에게 약속한 3년의 유예 기간 중 딱 1년이 남았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해 나갈 사회적 기업 창업을 생각하고 있지만 누구와 어디서 일을 시작할지는 여전히 쉽지 않은 문제다.―‘좋은사람들’과 함께하지 않나요?
“노인 관련 일은 모두 공짜, 무료 봉사라는 시선이 너무 강합니다. 할 일은 여기저기 보이고 질적으로 한 단계 높은 시스템을 만들고 싶은데 어디서 출발할지 그림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큰 성공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지속 가능성은 담보돼야 하지요. 멤버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번듯한 직장인인 그들에게 급여도 보장 못하는 창업을 함께 시작하자는 말은 차마 꺼내지 못하겠더라고요.”
당초 그의 동네가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이란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여기서도 못한다면 어려운 지역에서는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돈이 많든 적든 나이는 사람을 약하고, 외롭고,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부자들의 여유를 빌려 우리 사회를 선도하는 모델을 만들어 내는 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남은 1년, 뭔가 만들어내야죠. 3년을 쏟아붓는데 뭔가 돼 있겠지요. 전 어렸을 때부터 어르신들이 좋았어요. 그분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저 기쁩니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하고 싶습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