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배만 불리는 고금리와 독소조항… 서방 국가 “악마의 자금”
중국 기술자들이 에티오피아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철도를 건설하고 있다. [VCG]
CPEC는 중국이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460억 달러(약 56조7732억 원)를 투입해 2030년까지 중국과 파키스탄을 잇는 철도, 도로, 송유관, 교량 등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중국이 중동산 원유를 과다르항에서 환적해 CPEC를 통해 운송할 경우 현재 말라카해협을 지나는 1만2000㎞ 거리를 2395㎞로 단축할 수 있다. 중국은 2015년 CPEC 건설에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대가로 과다르항 운영권을 40년간 확보하고, 파키스탄에 상당한 규모의 차관까지 제공했다.
중국에 빌린 빚 크게 불어난 파키스탄
파키스탄 과다르항에 모인 주민들이 중국-파키스탄 경제회랑 건설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ARAB NEWS]
파키스탄은 지난해 6월부터 3개월간 이어진 사상 최악의 대홍수 사태로 300억 달러(약 37조 원) 피해를 입은 데다, 일대일로에 참여하기 위해 중국으로부터 빌린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사실상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졌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파키스탄의 외환보유고는 58억 달러(약 7조1600억 원)에 불과하다. 반면 대외부채는 1300억 달러(약 160조4400억 원)에 이르고, 그중 중국에 진 빚은 230억 달러(약 28조40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지난해 11월 2일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지원을 호소했다. 당시 파키스탄은 중국 정부로부터 차관 40억 달러(약 4조9400억 원), 중국 상업은행으로부터 33억 달러(약 4조700억 원)를 받아냈다. 파키스탄은 일대일로 때문에 ‘부채의 덫’에 빠지고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중국으로부터 또다시 대규모 자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또 중국 정부는 파키스탄 정부와의 통화스와프를 기존 300억 위안(약 5조4600억 원)에서 400억 위안(약 7조2800억 원)으로 확대했다.
부채 상환 못 해 자산 중국에 넘기는 국가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일대일로 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다. [FMPRC]
하지만 파키스탄처럼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참여한 개발도상국(개도국)과 저개발국은 줄지어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스리랑카, 잠비아, 에콰도르, 레바논, 가나, 이집트, 튀니지, 페루, 에티오피아, 미얀마, 방글라데시, 캄보디아, 우간다 등이 디폴트를 선언하거나 경제위기에 빠졌다. 중국이 이들 국가에 일대일로 참여를 독려한 결과, 이들 국가는 경제악화 등으로 빚더미에 앉게 됐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2022년까지 최빈국 74개국이 갚아야 할 채무 규모는 350억 달러(약 43조1900억 원)에 이르고, 이 중 40% 이상이 중국에 상환해야 하는 부채였다. 또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항만·공항 등 운영권을 중국에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미 스리랑카는 14억 달러(약 1조7300억 원)가 투입된 함반토타항 운영권을 중국 업체에 넘겼다. 이집트, 우간다, 캄보디아도 주요 자산에 대한 운영·소유권을 잃었다. 이 때문에 서방 국가들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부채의 함정(debt-trap)’이라고 비판해왔다.
중국 건설회사가 완공한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고속도로. [VCG]
중국은 개도국 및 저개발국과 차관 계약을 맺을 때 철저히 ‘차이나 스탠더드(China Standard)’를 적용한다. 차이나 스탠더드는 공사에 중국산 기자재를 쓰고, 중국 업체가 중국인을 고용하는 등 공사를 맡으며, 중국 기업이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개도국과 저개발국은 투명성 확보와 부패 방지 방안 마련 등 까다로운 조건을 내거는 선진국이나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로부터 차관을 제공받기 어렵다 보니 중국이 제시한 불리한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사실상 국가 차원 고리대금업
일대일로가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중국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통해 그야말로 국가 차원에서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중국 차관의 평균 금리는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오르기 전인 2021년에도 연 5%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금리는 연 2%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통화스와프 금리는 평균 0%대였다. 유럽연합(EU)의 재정자금 지원 금리도 연 3%대다.중국은 채무 상환 기간 역시 대부분 10년 미만으로, IMF 등과 서방 국가들이 개도국에 제공하는 공적개발원조(일반적으로 이자율, 상환 기간, 거치 기간 등 3요소를 고려해 시중 일반자금 융자보다 차입국에 유리한 조건에 제공하는 양허성 차관) 상환 기간이 28년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훨씬 짧다. 특히 중국은 차관을 제공할 때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면 중국이 채무국의 주요 자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독소조항을 계약서에 넣는다. 높은 이자 탓에 불어나는 원금을 제때 갚지 못하면 중국이 공항이나 항구 운영권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결국 중국만 배 불리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추악한 민낯’이라고 볼 수 있다. 세바스티안 호른 세계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해외 투자액 중 구제금융 성격의 차관 비중은 코로나19 사태 전만 해도 20%가 안 됐지만 지난해 60%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구제금융성 차관은 IMF 구제금융액의 20% 수준에 달한다.
통화스와프 협정은 경제난에 빠진 국가가 자국 화폐를 맡기고 미리 정해진 환율로 상대국 통화를 빌려올 수 있는 국가 간 계약을 말한다. 중국은 최근 들어 차관을 이 통화스와프 협정 형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또 외화가 바닥난 일대일로 참여국을 대상으로 통화스와프 계약을 연장해주는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1월 8일 남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일대일로 참여국 아르헨티나와 350억 위안(약 6조3700억 원) 규모의 자금을 제공하는 통화스와프 협정을 맺었다. 중국은 2021년 기준 40여 개국과 4조 위안(약 728조 원)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는데, 이 중 20여 개국이 일대일로 참여국이다. 호른 이코노미스트는 “통화스와프로 위안화를 받는 국가는 위안화 결제가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서방 국가들은 일대일로 참여국은 물론, 중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은 국가들이 빌려 쓰는 중국 차관은 구제금융이 아니라 ‘악마의 자금’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74호에 실렸습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