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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끝으로 읽는 우주” 국내 첫 ‘만지는 과학도서’ 나왔다

입력 | 2023-01-30 03:00:00

과기한림원, 우주 점자촉각도서 제작
NASA의 점자촉각도서 3종 엮어 ‘우주의 신비로운 이야기’로 발간
비유 활용한 설명과 촉각모형 통해 점자책 한계 뛰어넘었다는 평가
비장애인 위해 점자-한글 병기, 장애 공감 매개체로서도 의미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지난해 발간한 점자촉각도서. 3차원(3D)으로 표현돼 있어 손끝으로 달 표면을 느낄 수 있다. 이영애 동아사이언스 기자 yalee@donga.com


두툼한 책을 펼치면 하얀색 종이 위에 오돌토돌한 달 표면이 표현돼 있다. 눈을 감고 손끝으로 달 모양을 따라가다 보면 깊은 달 분화구와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아폴로 우주선 착륙 지점도 만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과기한림원)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만지는 과학도서 보급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지난해 말 NASA의 점자촉각도서 3종을 엮어 ‘우주의 신비로운 이야기’ 점자촉각도서 한국어판을 발간했다. NASA가 제작한 점자촉각도서를 한국어판으로 발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한국의 시각장애인들도 우주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됐다.
● NASA 허락 간단했지만 제작 과정은 난관의 연속
점자촉각도서의 제작과 무상 활용에 대해 NASA의 허락을 받는 일은 의외로 간단했다. 저작권과 로고를 명시해 달라고 요구하고 촉각모형 인쇄 기술에 대해 확인하는 과정 등이 전부였다.

하지만 제작 과정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첫 시작인 원본을 구하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 NASA에 직접 문의했지만 점자촉각도서 3종의 발간 연도가 2002년, 2012년, 2019년으로 제각각인 데다 정식 발간이 아닌 이벤트성 도서라 구하는 데 애를 먹었다. 다행히 한 권은 중고로, 두 권은 원저자에게 직접 연락해 구했다.

어렵게 원본을 구한 뒤에도 한국어판 도서 제작 과정은 산 넘어 산이었다. 도서 제작 실무 전반을 담당한 강정아 과기한림원 경영지원실장은 “도면 없이 원본만 겨우 구한 상황에서 수작업으로 일일이 촉각 모형을 따라 만들어야 했다”며 “겨우 완성해도 모형을 인쇄하는 특수 종이가 쭈글쭈글해지는 등 시행착오가 있었다”고 했다. 점자촉각도서를 인쇄하기 위한 특수지인 ‘페트지’를 구비한 업체부터가 드물었다. 결국 점자도서업체 3곳에 촉각 금형 제작, 글씨 입히는 작업 등 세부 업무를 따로 의뢰해 도서를 완성할 수 있었다. 강 실장은 “달 표면 같은 부분은 손가락 하나로 분화구의 깊이, 넓이 등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책의 퀄리티를 결정짓는 부분으로 상당히 섬세한 기술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결국 2∼3개월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던 작업은 6개월을 넘겼다. 모양이 정해져 있는 글자가 아니라 모든 페이지에 다른 그래픽을 넣어야 해 일괄적으로 찍어낼 수 없고 한 권을 인쇄한 뒤 오류를 수정하는 식으로 진행하다 보니 작업이 더뎠다. 원본이 여분 없이 딱 1권씩만 있어 이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조심스럽게 모형을 떠야 했던 것도 일정이 지연된 이유 중 하나였다.

어렵게 제작된 만큼 최대한 활용도를 높이겠다는 게 과기한림원 측 생각이다. 완성된 점자촉각도서는 점자도서관과 특수학급이 있는 초등학교에 배포됐다. 강 실장은 “NASA 측에 점자촉각도서와 함께 오디오파일을 함께 제작하겠다고 요청했다”며 “활용도가 높아지면 제작 예산을 늘려 개정판을 만들고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점자와 한글 병기해 장애인 공감 매개체 역할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출판 도서 중 점자도서 출간 비율은 0.2%에 불과하다. 촉각으로 그림이나 그래픽을 느낄 수 있는 점자촉각도서는 그중에서도 극소수다.

시각장애인이면서 장애 공감교육을 하는 은진슬 다양성컨설턴트는 “시각장애인들은 3차원 입체 구조에 대해 점자가 개략적으로 설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데 점자촉각도서가 이런 갈증을 해소해 준다”고 말했다. 점자 설명의 한계를 촉각모형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발간된 NASA의 점자촉각도서 한국어판이 비유를 통해 이해가 어려운 부분을 자세히 설명했다는 점도 높게 평가했다. 은 컨설턴트는 “달의 단면을 샌드위치에 비유해 설명한 부분에서 효과적인 설명을 위해 고민한 흔적이 보여 감명깊었다”며 “점자는 그 사람의 경험치, 지식, 성향에 따라 정보의 질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번 점자촉각도서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와 비장애인을 위한 한글을 병기했다는 점이 새롭다. 은 컨설턴트는 “점자촉각도서 자체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점자촉각도서
그림을 볼록 튀어나오게 하거나 점자로 그림을 표현해 손끝 촉각으로 그림을 인지하게 하는 책.
이영애 동아사이언스 기자 ya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