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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칼럼]국토세, 탄소세, 횡재세… 세금 너무 쉽게 아는 이재명·민주당

입력 | 2023-01-30 03:00:00

이 대표-민주당 뜬금없는 ‘횡재세’ 띄우기
한국 현실과는 전혀 안 맞아
국토세-탄소세도 ‘로빈 후드 스토리’
기업 때리기로 ‘정치적 횡재’ 기대 말아야



천광암 논설주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난방비 문제 해결 방안으로 ‘횡재세’를 거론했다. 이 대표는 25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현 제도를 활용해 정유사에 부과금을 매기는 방안을 먼저 언급한 뒤 “차제에 다른 나라들이 다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횡재세 제도도 확실하게 도입하는 것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부 민주당 의원은 해당 법안까지 국회에 발의해 놓은 상태다.

우선 “다른 나라들이 다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횡재세”라는 이 대표의 말은 사실이 아니다. 미국 중국 일본에는 횡재세가 없다. 횡재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유럽에서 주로 도입되거나 논의되고 있다.

영국이 특히 선도적인데, 한국과는 환경 자체가 크게 다르다. 영국은 세계 3대 유종(油種) 중 하나인 ‘브렌트유’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산유국이다.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BP, 셸, 하버에너지 등 글로벌 석유메이저들까지 여럿 거느리고 있다. 횡재세는 이 업체들이 북해유전에서 원유와 가스를 뽑아 올리면서 얻는 초과이윤에 대해 매기는 세금이다.

영국과 달리 한국에는 자체 유전을 갖고 원유를 생산하는 ‘석유회사’가 없다. 100% 수입으로 들여온 원유를 정제해서, 휘발유 경유 항공유 등 석유제품의 형태로 파는 ‘정유회사’들이 있을 뿐이다. 이런 정유사업은 노다지나 횡재와는 거리가 있다. 원유가 등락에 따른 리스크를 고스란히 져야 하고 설비와 기술에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한다. 그래서 영국도 정유사업이나 석유제품 소매를 통해 벌어들인 이윤에는 횡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이 대표와 민주당이 또 하나 간과해선 안 되는 것은 정유산업이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이라는 사실이다. 지난해 국내 정유사들의 석유제품의 수출액은 570억 달러로 전체 품목 중 반도체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한국 정유사들의 매출 60%는 수출에서 나온다. 이런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까지는 사활을 건 설비투자와 기술개발, 마케팅 노력이 있었다.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통해 창출한 영업이익에 ‘횡재’라는 딱지를 붙여 국가가 거둬간다면 투자와 고용은 위축되고 경쟁력도 추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올 초부터 횡재세가 한층 강화되자 관련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줄이는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한국 수출산업은 가뜩이나 간판 주자인 반도체의 부진으로 앞이 안 보이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에 정유산업마저 ‘세금 폭탄’으로 팔다리를 묶을 수는 없다.

횡재세는 세제 원리로 봐도 ‘나쁜’ 세금에 속한다. 명확성과 예측가능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재무장관을 지낸 비토르 가스파르 국제통화기금(IMF) 재정국장은 유럽연합(EU)의 횡재세 도입 논의와 관련해 “세제의 안정성을 해치는 문제적 발상”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형평성도 문제다. 정유는 대상이 되고 반도체 자동차 방위산업 금융은 안 되는 근거는 뭔가. 난방비가 문제라고? 그럼 정유사가 아니라,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정확한 ‘번지수’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석유 수요가 급감하자, 한때 선물(先物)시장 원유가격이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까지 떨어진 일이 있다. 원유를 돈을 받고 파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팔아야 했다. 그해 상반기 한국 정유사들도 약 5조 원의 손실을 냈다.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생기면 정부가 나서서 보전해주도록 할 셈인가. 반도체는? 자동차는? 철강은?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기본소득 재원 마련 방안으로 처음에 국토보유세를 들고나왔다. 그러나 여론의 역풍이 만만치 않자 다시 탄소세를 대안으로 내놨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연간 법인세의 절반, 또는 총액과 맞먹는 금액을 거둬들인다는 구상이었다. 이런 일이 만약 현실이 된다면 한국 기업들은 법인세를 두 번 내는 셈이 된다. 그나마 이 꼴 저 꼴 참아가며 국내에 남아 있는 기업들마저 전부 짐을 싸서 나가라고 등을 떠미는 꼴이다.

국토보유세, 탄소세, 횡재세에는 동일한 ‘스토리 라인’이 있다. 먼저 악당이 그려진다. 국토보유세에는 투기에 눈먼 땅 주인, 탄소세에는 환경을 파괴하는 기업, 횡재세에는 과도한 이윤을 탐하는 기업이 악당으로 등장한다. 그러면서 정치는 스스로를, 약자를 대변하는 로빈 후드로 포장한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국민들도 진부한 ‘로빈 후드 스토리’에 이골이 난 지 오래다. 횡재세 논의는 이쯤에서 접는 것이 좋다. 기업 때리기로 정치적 ‘횡재’를 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