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대기업의 한 센터장은 최근 신년 보고서 작업을 하다 주변을 둘러보곤 격세지감을 느꼈다. 같은 층 사무실의 다른 센터에 센터장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이다. 같이 야근을 하고 있던 40대 팀장은 “저라도 남아 있으니 너무 고맙죠?”라며 농담 섞인 생색을 냈다고 한다. 젊은 직원들은 정시 퇴근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팀장급 이상만 남아서 일을 마무리하는 요즘 사무실 풍경이다.
▷국내 100대 기업들이 원하는 인재상의 첫 번째 기준으로 ‘책임의식’을 꼽았다. 대한상공회의소가 5년 단위로 시행하는 인재상의 올해 조사 결과다. 2018년에는 5위에 그쳤던 책임의식이 1위로 올라온 것이 눈에 띈다. ‘도전정신’과 ‘소통·협력’, ‘창의성’, ‘열정’을 모두 제쳤다. 업무 현장에서 책임의식 강화가 그만큼 절박했다는 의미다. 대한상의는 결과를 분석하면서 Z세대를 콕 찍었다. “보상의 공정과 자아실현을 요구하는 Z세대에 기업들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의식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시대와 트렌드에 따라 변한다. Z세대가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하는 시기인 만큼 이들의 특징이 인재상의 조건과 기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Z세대가 받는 만큼만 일하고, ‘워라밸’을 챙기며, 조직 논리를 거부한다는 게 기업들이 갖고 있는 인식이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퇴사를 20번 했다는 ‘프로퇴직러’가 소개되는 등 1, 2년 안에 회사를 옮기는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개인 역량보다는 근무 태도에 비중이 더 실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기업의 ‘꼰대 문화’를 거부하는 신세대 직원들의 항변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바뀐 근무 특징이 업무의 완결성을 해치거나 협업을 저해하는 경우까지 정당화하는 방패가 될 수는 없다. ‘내가 주인’이라는 자세로 일하는 것은 기업을 위한다기보다 자신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동력이기도 하다. 기업들이 앞으로 발굴, 투자하고 키워갈 미래 인재를 찾는 기준도 이것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5년 전 2위였던 ‘전문성’은 올해 6위까지 밀렸다.
이정은 논설위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