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Change]〈24〉‘라엘’ 백양희 대표
韓제조업체 통해 제품 개발-생산, 아마존 출시 6개월만에 판매 1위
美 성공 바탕 한국에도 법인 설립 “동양인 여성 창업, 오히려 강점돼”
백양희 대표 사진 제공
문득 백 대표의 머릿속에 의문이 스쳤다. ‘왜 미국 시장에는 건강에도 좋고 기능도 좋은 생리대가 없을까.’
● K기술력 바탕으로 온라인 시장 먼저 공략
백 대표가 진단한 미국 생리대 시장의 문제는 일부 대기업의 독점으로 제품 혁신이 더디다는 점이었다. 유기농 생리대는 성분이 몸에 무해하더라도 흡수력이 떨어졌다. 백 대표는 제품 개발과 생산을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진행했다. 유럽, 중국 등 다양한 공장 후보지를 물색해 봤지만 깐깐한 고객을 상대하는 한국 제조업체가 가장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를 통해 흡수력이 높은 유기농 생리대를 개발할 수 있었다.
특히 주목한 것은 미국 아마존 쇼핑 문화다. 소비자들은 아마존에서 브랜드 이름이 아닌 제품 키워드를 검색해 쇼핑하고 있었다. 구매가 많이 일어나고 좋은 리뷰가 많은 제품일수록 검색 결과 첫 페이지에 노출됐다. 그 어떤 회사도 ‘오가닉 패드’라는 키워드로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 대표는 제품력만 좋으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봤다.
라엘 생리대는 아마존 론칭 6개월 만에 유기농 생리대 부문 판매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론칭 2년 만에 생리대 전체 카테고리 1위에 올라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라엘은 지난해 3월 3500만 달러(약 433억 원) 규모의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했다. 누적 투자금은 5500만 달러(약 700억 원)로, 전 세계 펨케어 기업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아마존에서 상품성이 검증되면서 미국 타깃, 월마트 등 대형 유통채널에도 입점했다.
백 대표는 “K팝, K콘텐츠, K뷰티 등의 영향으로 최근 5년 새 ‘한국은 트렌디하고 창의적인 나라’라는 이미지가 생겨 ‘한국에서 만들었다’고 하면 인식이 좋다”며 “한국 기술력에, 여성이 더 잘할 수밖에 없는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동양인 여성’으로서의 창업이 오히려 강점이 됐다”고 말했다.
● 한국에 역진출한 미국 스타트업
라엘은 백 대표, 안 CCO, 원빈나 CPO 등 한인 여성 세 명이 공동 창업한 미국 기업이다. 그런데 2017년 미국 법인 설립 6개월여 만인 2018년 1월, 한국에도 법인을 설립했다. 대다수 스타트업들이 한국 법인 설립 후 미국으로 진출하는 것과 반대되는 행보다. 백 대표는 “한국에서 제조되는 상품을 한국 소비자들이 아마존을 통해 비싼 물류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하는 것이 안타까워 ‘아예 한국에 들어가서 한국 소비자에게 제품을 소개해야겠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생리대를 넘어 여성의 전 생애 주기를 다루는 ‘홀리스틱(Holistic) 사이클 케어’에 집중할 계획이다. 그는 “여성이 생리하는 기간인 1주일뿐 아니라 4주 간격의 호르몬 주기에 따른 피부 상태, 컨디션 등에 알맞은 건강기능식품과 화장품 등을 제공해 여성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라엘이 미국에서 만든 변화: 여성 호르몬 주기에 따른 신체 변화를 알려주는 짧은 리얼리티쇼 등 각종 교육 콘텐츠를 제작해 여성들의 인식 제고.
#라엘의 비전: 생리를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상으로 인식하는 것.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