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이은 박제사 오정우 연구원 경력 40년 아버지 가르침 따라 동물 관찰해 살아 움직이듯 연출 손끝으로 생명 불어넣는 마법사… “자연사 한 페이지 만들고 있다”
대를 이어 천연기념물 전문 박제사로 활동하는 아버지 오동세 연구원(왼쪽)과 아들 오정우 연구원. 대전=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아버지의 손길을 거치면 죽은 동물이 살아나는 것 같았어요. 마치 아버지가 손끝으로 생명을 불어넣는 듯했죠.”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의 오정우 연구원(39)은 어릴 적 박제사인 아버지 오동세 국립중앙과학관 자연사연구실 연구원(63)이 꼭 마술사 같았다고 했다. 아버지의 손길이 닿으면 죽었던 새가 다시 날개를 활짝 펼쳤다.
20대 중반이 된 정우 씨가 박제를 배우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딱 잘라 “하지 말라”고 했다. 당시까지도 사냥당한 동물을 불법으로 박제한다는 인식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부자(父子)가 함께 박제사로 일한다. 대전 서구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자연문화재연구실에서 지난달 27일 만난 부자는 “우리는 한국 자연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다”며 웃었다.
대전 서구 문화재청 천연기념물센터에는 이들 부자가 직접 제작한 천연기념물 박제 표본 1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대전=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잘 만들어야 한다. 그럼 보이는 곳은 자연스럽게 모양이 나오게 돼 있다”고 가르쳤다. 동물 사체는 몸속의 지방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박제를 만들어도 얼마 못 가 표면이 변색되거나 봉제선 사이로 지방이 흘러나온다.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사체의 속을 말끔히 정리하는 데만 제작 시간의 3분의 2를 투입한다. 조류는 깃털 하나라도 틀어지면 날개가 가지런하게 접히지 않기에 하나하나 제 위치에 맞게 배치한다.
아버지는 또 “동물의 습성을 연구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장면을 연출하라”고 강조했다. 이날 연구실에는 정우 씨가 최근 건조 작업 중인 천연기념물 매 암수 한 쌍의 표본이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날개를 활짝 편 수컷이 오른발에 움켜쥔 먹이를 바로 아래 날아오는 암컷의 왼발에 건네는 역동적인 찰나를 재현한 것이다.
“매는 수컷이 사냥한 먹이를 공중에서 암컷에게 발 사이로 전해주는 습성을 지녔어요. 박제로 동물의 생생한 습성을 보여주고 싶어서 실제 동물 사진을 붙여놓고 똑같이 만들곤 합니다.”(정우 씨)
박제사 한 명이 1년에 만들 수 있는 박제는 많아야 50개 정도다. 그래서 표본이 없는 종 위주로 먼저 작업을 한다. 최근에는 201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주개 동경이 표본을 만들고 있다. 정우 씨는 “후세에 물려줘야 하는 역사 자료라는 생각으로 털끝 하나까지 정확하게 보여주려 노력한다”고 했다.
“일주일간 공들여 만든 표본의 깃털에서 오묘한 무지갯빛이 반짝였어요. ‘만약 멸종되더라도 아이들이 이 귀한 자연유산을 만날 수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럴 때 보람을 느낍니다.”(정우 씨)
대전=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