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 비펀 ‘자화상’, 1820년경.
세라 비펀은 미술사에 기록되지 않은 여성 화가다. 그 대신 많은 자화상을 남겨 스스로를 기록했다. 검은색 의상을 차려입은 그림 속 화가가 우리를 응시하고 있다. 탁자 위에는 그림 도구들이 놓여 있다. 벽에 걸린 것 같은 미니어처 초상화를 그리는 중인가 보다. 그런데 양팔이 없다. 오른쪽 어깨에 작은 붓이 고정돼 있을 뿐. 어찌 된 일일까?
비펀은 1784년 영국 서머싯의 한 농가에서 양팔과 다리가 없이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어릴 때부터 입으로 바느질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법을 독학했다. 13세 무렵, 비펀의 부모는 박람회나 서커스를 여는 듀크스라는 남자에게 딸을 맡겼다. 장애를 가진 딸이 밥벌이하며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 생각했을 터다.
비펀은 관중들 앞에서 입과 어깨를 이용해 바느질하고, 글 쓰고, 미니어처 초상화를 그렸다. 그림은 꽤 잘 팔렸지만, 지급받는 돈은 미미했다. 다행히 그의 재능을 알아본 부유한 귀족의 후원으로 16년간의 떠돌이 공연 생활을 청산하고, 왕립예술원 화가에게 그림을 정식으로 배울 수 있었다.
가치 있는 것은 언젠가는 발견된다. 시대가 위인을 재발견하기도 한다. 2022년 11월 비펀의 예술적 업적을 조망하는 전시회가 런던에서 열렸다. 작가 사후 172년 만에 갖는 첫 개인전이었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