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미타팝병원에서 국내 의료진과 현지 의료진이 고관절 및 무릎관절 등 24건의 인공관절 수술을 성공리에 마치고 단체 사진을 찍었다. 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신희영 교수, 일곱 번째가 김인권 지도교수. 미타팝병원 제공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지난달 17일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의 이른 아침, 스님이 지나가는 길마다 찹쌀과 각종 과자, 면류 등 먹을거리를 든 주민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스님들이 들고 있는 공양그릇이 금세 가득 찰 정도였다. 이 중 일부는 스님이 하루 먹을 양식이다. 나머지는 그 지역의 가난한 주민들의 소중한 식량이 된다.
라오스 전역에서 매일 오전 5∼7시에 이뤄지는 이런 나눔과 베풂의 종교의식을 ‘탁발’이라고 한다. ‘탁발’은 끼니를 굶는 사람을 구제하는 라오스의 독특한 문화다. 대한민국과 라오스 양국 간에도 탁발 행렬에 비할 만한 나눔과 베풂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6·25전쟁 직후 대한민국은 의사도, 의료기기도 부족해 병원에서 간단한 수술조차 어려운 상황이었다. 심장수술, 뇌수술, 관절수술 등의 고난도 수술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당시 미국 미네소타주립대는 서울대 의대 의료진 77명을 초대해 첨단 의술을 가르쳤다. 이른바 ‘미네소타 프로젝트’라 불리는 1955∼1961년 진행된 서울대 재건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다시 돌아온 77명은 미국에서 배운 의술로 우리 국민의 건강을 돌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3년 동안 단절됐던 라오스에 대한 의료 나눔과 베풂이 올해부터 다시 재개됐다. 이종욱-서울 프로젝트 운영위원장인 신희영 서울대병원 소아과 명예교수(68·대한적십자사 회장)는 라오스 소아백혈병 환자들을 위해 한국에서 가져온 항암제 등 약품 기증과 함께 추가 1억 원 지원을 약속했다. 2014년부터 현재까지 총 2억4000만여 원을 모금해 구입한 항암제를 지원해 총 42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
또 유전자 질환으로 뼈가 자라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치료제를 지원해 건강을 되찾아 주기도 했다. 이 소아 환자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역할은 최용 서울대병원 소아과 명예교수(79)가 담당했다.
또 라오스 외상전문병원인 미타팝병원의 의료진에게 인공무릎관절, 인공고관절 수술을 가르쳐준 김인권 지도교수(현 서울예스병원 원장·72)는 이번 라오스 의료봉사에서도 4일 동안 무려 24건의 무료 수술을 하면서 그곳 의료진에게 고난도 기술을 가르쳤다.
김 지도교수는 “환자들 중에선 한국 의사에게 인공관절 수술을 받기 위해 3년 가까이 기다린 이들도 있었기에 힘들다는 이유로 수술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24건의 총수술비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1억5000만 원이 넘는다. 라오스 현지에서 진행된 김 지도교수 수술 팀에는 기자와 새로 합류한 이길용 신경외과 전문의가 열심히 도왔다.
이러한 노장들의 의료봉사는 베트남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한국인 의사로는 처음으로 9월부터 베트남 다낭의 주이떤대 의대 이사회 의장으로 임명된 허재택 전 중앙보훈병원 원장(69)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이곳에서 향후 정보기술(IT)을 이용한 의학교육 혁신, 최신 의료기자재 및 장비 도입,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산물들을 이용한 새로운 분야 개척 등을 약속했다.
이번에 처음 라오스 의료봉사를 한 이길용 신경외과 전문의는 “젊은 의사들도 하기 힘든 벅찬 일들을 하는 노장들을 보니 저절로 존경스럽다는 마음이 든다”면서 “매년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국내에 은퇴하거나 은퇴를 앞둔 의사들의 탁발 행렬이 우리의 의술이 필요한, 또 제2의 한국을 꿈꾸는 라오스 베트남 등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