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기자
데이터가 모든 산업의 화두다. 인간을 흉내 내는 인공지능(AI)을 구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축적된 기술에 기대왔던 전통 산업을 새롭게 하는 데도 방대한 데이터 활용은 기본이 됐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고 외치고 나선 자동차 산업도 마찬가지다. 차 산업의 새로운 엔진은 이제 데이터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차는 늘 다양한 데이터를 만들어내 왔다. 차의 상태를 알 수 있는 엔진 회전수나 속력, 누적 주행거리, 남은 연료량, 냉각수 온도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이 데이터는 계기판 속의 눈금 혹은 숫자로 머물다가 증발돼 왔다. 사고기록장치(EDR)에 일부 기록이 남지만 말 그대로 사고가 난 뒤에나 살펴보는 데이터였다.
상황을 바꿔 놓은 것은 통신으로 외부와 연결되는 ‘커넥티드카’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차량 내부 데이터는 물론이고 지도 데이터와 결합된 위치 정보도 즉시 전송할 수 있게 됐다. 여기에 과거보다 훨씬 늘어난 각종 센서와 카메라까지 결합되면서 각각의 차는 명실상부한 ‘데이터 머신’이 됐다.
자동차 제조사에도 이런 데이터는 중요하다. 승용차와 영업용 차가 어떻게 다른 주행 패턴을 보이는지를 분석하면 용도에 따라 다른 스펙의 차를 설계할 수 있다. 앞으로 늘어날 차량 공유 서비스에 꼭 맞춘 차를 설계하는 작업이 데이터 분석에 달려 있는 셈이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자율주행 기술 경쟁에서도 데이터 확보와 분석이 가장 중요한 열쇠다.
차량 데이터는 운전자나 제조사를 뛰어넘어 전혀 다른 서비스에도 활용될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차를 타고 이동하고 또 어딘가에 머무르는 흐름을 분석한 정보는 쇼핑이나 레저, 숙박 같은 소비 활동과 연결될 수 있고 새로운 물류 서비스에 접목될 수도 있다. 이쯤 되면 차량 데이터는 돈이 되는 정보다.
최근 유럽과 미국에서는 차량 데이터의 권리에 대한 새로운 입법 움직임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차량의 위치와 부품 상태는 물론이고 주변 환경 등에 대한 데이터는 그동안 자동차 제조사가 독점해 왔다. 이를 차량 소유자와 수리·정비업자, 보험사 등에도 공유하게 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런 데이터 공유는 차 산업의 판도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 ‘데이터 놀이터’에서 가장 잘 뛰어놀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기업이 차 산업의 새로운 강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CES에서 아마존은 표준화된 전기차 데이터 수집 체계로 ‘EVD’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글로벌 빅테크까지 뛰어드는 차량 데이터 전쟁은 벌써 그 막이 올랐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