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물가 둔화 속도가 미국 등 주요국에 비해 더딜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 고강도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수요측 물가 상승 압력이 여전히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물가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는 만큼 향후 금리인상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3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둔화 속도는 주요국에 비해 다소 완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최근 ‘물가 둔화 흐름 점검: 주요국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이 같은 내용을 소개했다.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6.3%) 정점 이후 지난해 12월(5.0%)까지 5개월간 둔화폭(1.3%포인트)이 정점 전 5개월간 확대폭(2.6%포인트)의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지난해 6월(9.1%) 정점 후 5개월 간 둔화폭(2.0%포인트)이 정점 전 5개월간 확대폭(1.6%포인트)를 상회했다.
오강현 한은 조사국 물가동향팀 차장은 “우리나라의 최근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 속도는 과거 주요 둔화기에 비해 비슷하거나 다소 더딘 모습”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우리나라의 물가 둔화 속도가 주요국보다 더딜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부터 유류세 인하폭이 축소되는 데다, 전기·가스,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이 뒤늦게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는 전달(5.0%)보다 소폭 상승한 5.2%로 6개월 연속 5%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한은은 소비자물가는 이번 달에도 5% 내외의 상승률을 나타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은은 “최근 우리나라의 물가 둔화 속도가 주요국에 비해 완만한 것으로 보이며 우리나라의 과거 주요 둔화기에 비해서도 다소 더딘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우리나라는 주요국에 비해 기저효과가 작은 데다 올해 중 유류세 인하폭도 축소되면서 상대적으로 둔화폭이 크지 않을 수 있다. 올 들어 휘발유는 유류세 인하폭이 37%에서 25%로 축소된 반면 유가격(-6.6%)이 더 큰 폭으로 하락했다.
오 차장은 “우리나라는 주요국에 비해 그간 누적된 비용 상승 압력이 전기·가스, 대중교통 등 공공요금에 뒤늦게 반영되면서 향후 물가 둔화 흐름이 상대적으로 더딜 가능성이 있다”며 “가공식품 가격의 경우 그간 큰 폭으로 높아진 국제식량가격이 시차를 두고 반영되면서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높은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는 향후 물가 둔화 흐름을 일부 제약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또 우리나라는 주택시장 전세가격 등 임대료 상승률이 미국에 비해 이른 시점에 낮아지면서 소비자물가 내 집세 상승률도 상대적으로 일찍 둔화하기 시작했다. 다만 자가주거비가 포함된 미국의 집세는 소비자물가 내 비중이 상당히 커 향후
기조적 물가 흐름 변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오 차장은 “이러한 물가 여건들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앞으로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주요국과 마찬가지로 경기하방압력이 커지면서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지난해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이 주요국에 비해 석유류가격과 공공요금에 뒤늦게 반영되면서 둔화속도는 상대적으로 더딜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금융통화위원회 한 위원은 “지속적인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수요측 물가압력이 계속 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분석된 것은 통화정책의 파급시차를 감안하더라도 다소 예상 밖의 결과”라고 말했다.
한은은 이와 관련 “수요 요인의 기여도가 대체로 유지되고 있는 것과 달리 공급 요인의 기여도는 크게 축소되고 있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통화정책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2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 가장 크게 나타난다는 점도 감안해 분석결과를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