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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터너 美 신임 북한인권특사에 대한 기대와 우려 [한반도 가라사대]

입력 | 2023-02-03 14:00:00


“나는 한국어를 구사할 순 없어도 인권을 ‘구사할 수’ 있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재임 8년의 대부분을 미국의 북한인권특별대사로 일한 로버트 킹은 2022년 10월 한국어로 출간된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2009년 5월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자신에게 북한인권특사직 수락을 제의한 것은 자신이 한국 전문가라서가 아니라 인권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미 터프츠대 플레처법률외교대학원에서 냉전 초기 중부 유럽의 다민족 공산주의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쓴 후 7년 동안 독일 뮌헨에 있는 자유유럽방송 본부에서 근무했습니다. 이후 미 의회에 자리를 잡았고 거의 25년 동안 톰 렌토스 하원외교위원장의 비서실장이자 하원 외교위원회 실무국장으로 일하며 인권문제를 두루 다루게 됩니다. 그는 “북한의 인권유린에 경악함과 동시에 이 문제에 완전히 사로잡혔다”며 오바마 행정부 2기, 존 케리 국무장관 시절까지 자리를 지킨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로버트 R. 킹, ‘북한인권과 불처벌의 관행(김수경 한신대 교수 역, 도서출판 한국과미국, 2022)’



“나는 한국어도 구사할 수 있다. 거기다 인권도 구사할 수 있다.”

14년 전 킹 특사의 수락 일성을 그의 후임인 줄리 터너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과장에게 대입한다면 이럴 겁니다. 한국계인 터너 과장은 글로벌 이슈를 다루는 미 국무부에서도 인권에 특화된 부서, 민주주의·인권·노동국에서 16년을 근무하면서 주로 북한인권 문제를 다뤘다고 합니다. 2017년 12월 국무부가 SNS에 공개한 ‘인권의 영웅들’이란 동영상에서 탈북 여성 지현아 씨와 직접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이신화 북한인권대사는 그의 지명을 반기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2022년 10월초 대사로 처음 방미해 국무부에 면담을 갔을 때 동석한 담당과장이었지요. 당시 좋은 인상을 받아 12월초 다른 회의로 짧게 다시 갔을 때 식사라도 하며 그의 북한인권에 대한 경함과 이해에 대해 들어보고 의견을 교환하고 싶었는데 못 만났어요. 지명이 빨리 승인되어 조만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가까운 협력을 크게 기대합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3일 6년간 공석이었던 북한인권특사에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과장을 임명했다. 터너 특사는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에서 16년을 근무하면서 북한 인권 문제를 주로 다뤘다. 사진 출처 미 국무부 인권·노동국 페이스북  동아일보DB



2005년 8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초대 북한인권특사로 지명했던 제이 레프코위츠 변호사는 한국어를 못했을뿐더러 인권, 특히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전문성도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3대 터너 특사는 2대인 킹 특사가 가졌던 인권 전문성에 모국어로서 한국어 능력도 가졌다고 하니 앞으로 북한 인권문제를 다뤄나갈 역사적인 사명을 수행하는데 엄청난 강점(strength)을 가진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8년 가까운 임기동안의 일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킹의 경험담을 읽으며 비교해보니 터너 특사에겐 상대적인 약점(weakness)이 적지 않습니다. 우선 그가 전임자에 비해 ‘정치적 무게감’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70대의 원숙한 의회 간부 출신 킹 특사는 지명 때부터 그 무게감으로만 한미 관계자들의 기대를 샀습니다. 실제 그는 한국과 북한을 수차례 오가며 북한인권문제를 조율했고, 미국 내에서 의회와 행정부의 교량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습니다.

로버트 킹 미국 대북인권특사(사진)는  2013년 4월11일(현지 시간) 미국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 힐레스 도서관에서 열린 한미 평화통일포럼에서 “인권 문제에 초점을 맞추면 장기적으로 북한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은 해법을 낳는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캠브리지=신석호 특파원 kyle@donga.com



2011년 북미 2.29합의 전후 대북 식량 지원 협상, 유엔인권이사회에서의 대북 인권 압박, 로버트 박·아이잘론 곰즈·전용수·케네스 배 등 북한 내 억류자 송환,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활동, 북한 내 정보유입 활동 등 북한인권운동사에 남을 이벤트들이 킹의 손을 거쳐갔습니다.

각각의 이슈들을 깨알같이 정리한 회고록을 보면 그는 재임기간 미국 국무부의 대사급 직책을 앞세워 한국과 미국 내 두터운 인맥을 동원하고 활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북한도 그를 여러 차례 초대해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관철하려고 했습니다. 그만큼 킹 특사의 개인적 무게감이 작용한 덕분이죠.

하지만 터너 특사는 어떤 기준으로도 전임자 만큼의 비중을 느낄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저도 2013년부터 3년 동안 워싱턴 특파원을 역임하면서 킹 특사를 공석 사석에서 여러 차례 만났지만 터너 특사의 이름은 이번에 처음 들었습니다. 한미 공공외교에 함께 몸담았던 동료들의 증언도 마찬가지더군요. 한마디로 터너 특사는 국무부에 입부해 ‘블랙’으로 북한인권업무를 수행해 온 실무 공무원이었던 것으로 평가됩니다.

미국 하원 인권위원회가 2010년 9월 23일 개최한 북한인권청문회 장면. 동아일보DB


16년 동안을 국무부에서 근무했다는 것으로 보아 의회 경험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대북특사라는 자리가 요구하는 경력의 큰 공백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북한인권 업무를 비롯한 대북정책의 키는 근본적으로 의회가 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이 모두 북한 핵문제와 인권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가운데 키를 쥐고 있는 몇몇 의원들에 대한 직접 소통과 관계 활용이 특사직을 잘 수행하는데 핵심적인 역량일 수 있습니다. 킹 특사도 국무부 대사 직책이 의회와의 관계 유지에 중요하다는 맥락에서 의회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지위(북한인권특사)는 북한 문제에 대한 의회 고위관계자들의 관심을 다루는 데에도 중요하다. 의회는 전통적으로 북한인권 뿐만 아니라 인권 전반에 대한 미국의 행동을 촉구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의회에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국가별 인권보고서, 인신매내 보고서, 국제종교자유 보고서)는 인권 문제에 대해 매년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다. 의회 위원회는 이러한 보고서와 관련된 청문회를 열고 다양한 인권 사안을 정기적으로 논의한다. 북한인권특사를 초청해 청문회를 자주 연다는 것은 그만큼 국무부 내에서 특사의 지위가 갖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북한이 전략핵과 전술핵 미사일 공격 능력을 완성하고 법제화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 좋건 나쁘건 미국과 북한 사이에 활발하게 진행되는 인권 이슈가 거의 없다는 것도 터너 특사에겐 위기(threat)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늘 새로운 상황과 도전에 대한 새로운 인물의 응전으로 발전해 왔다고 믿습니다. 터너 특사는 전임자보다 젊습니다. 전임자와 달리 냉전을 경험하지 못했을 터이구요. 새로운 세계관을 가진 젊은이들이 참신한 발상으로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온 것이 인류 역사 아니던가요. 터너 특사가 전임자와의 차이를 극복하고 북한 인권 문제에 새로운 획을 긋는 중대한 역할을 해 주어 과거의 기준에 따른 위기 요인을 미래를 만들어가는 기회(opportunity)로 삼아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