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회복 기업 덕분에 日 경제난 숨통 저성장 문턱 韓, 기업이 경제 버팀목 돼야 정부는 기업에 적극 귀 열고 성장 도와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전망하면서 한국의 성장률을 일본의 1.8%보다 낮은 1.7%로 발표했다. 지난 30여 년간 없던 일이다. 한국에서는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부동산 버블이 꺼졌다. 고용 시장에 한파가 불고 있고, 국민연금이 불과 한 세대 후면 고갈된다고 한다.
우울한 소식이 연이어 들리다 보니 한국도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 시대에 진입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이미 진입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과거의 일본보다는 사정이 나을 것이다. 2023년의 한국 기업이 버블 직후의 일본 기업보다 사정이 낫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경제성장률 목표는 겨우 2%에 불과하지만, 이 2%를 달성하기가 버거울 정도로 일본은 경제 체력이 약하다. 마치 꾸준한 노력으로 건강한 몸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40대 장년과 비교하면 어쩔 수 없이 체력이 달리는 60대 노인과도 같다. 그런데도 고용 사정은 상당히 양호하다. 일본에서는 지난 10년간 정규직 일자리와 비정규직 일자리가 꾸준히 증가했다. 임금은 소폭 오르는 데 그쳤지만, 올해는 경제단체연합회에서 앞장서 임금 인상을 독려하고 있다. 일본 경제가 60대 노인과도 같은 것은 고령화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연금 부담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70세까지 고용을 유지할 의무가 있다. 퇴직자가 연금의 수급을 65세에서 70세로 미루면 정부의 연금 지급액이 감소한다. 실업자가 줄고 전업주부가 파트타임이라도 일을 하게 되면, 정부의 세수입과 연금보험료 수입이 늘고 실업보험 등 복지 지출은 줄어든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최대한 취업자를 늘리려 하고 임금 인상을 압박한다. 그러나 기업의 실적이 형편없으면 일자리도 늘 수 없고 임금도 오를 수 없다. 기업의 실적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도, 일본 경제도 그나마 숨을 돌리고 있다.
한국은 지금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가계의 소비 여력이 감소하고 경제의 기초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저성장 시대에 유일한 희망은 기업이다.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자리를 잡고 버텨 준다면, 지금보다도 더 성장한다면 정년도 연장할 수 있고 청년 고용도 좋아질 수 있다. 일본처럼 정부의 부담을 기업에 떠넘길 수도 있다.
그런데 천만다행인 것은 2023년의 한국 기업은 저성장 초입의 일본 기업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 1990년대 일본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있었다. 노쇠한 경영인들은 버블기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기술개발에 소홀했고 미국 등에서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일본의 실패를 목격해서인지 지금 한국 기업에는 30년 전 일본 기업이 가지고 있지 못하던 ‘긴장감’이 있다.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에 안주한다면, 지금의 성공에 자만한다면 언제라도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긴장감이다.
그러나 기업을 응원한다는 것이 기업의 불법행위나 경영자 혹은 대주주의 불법행위까지 묵인하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사실 불법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기업가를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하에 사면해 주는 선진국이 어디에 있는가? 노조의 위법행위를 묵과해서는 안 되듯이 기업의 위법행위도 분명히 단죄를 받아야 한다. 다만 지난 10년간 한국 기업의 리더십이 바뀌면서 윤리경영을 중시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경쟁력 향상뿐만 아니라 올바른 기업문화를 위해서도 고심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과 기업인들에게서 희망을 본다. 저성장 시대의 한국, 기업이 희망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