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의 희열이라고 해야 할까요? 산을 달리는데 어느 순간 가급적 긴 거리를 달리게 됐습니다. 산을 오르고 내리고 힘들지만 완전히 탈진했을 때 새로운 에너지가 몸속에 끓어 넘치는 기분이 들었어요. 그 때부터는 산을 전투적으로 타고 있습니다.”
정재원 씨가 산을 오르고 있다. 2022년 서울100 트레일러닝대회 50km를 완주했다. 그는 “산을 달려 탈진해야 새로운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다. 정재원 씨 제공.
“2015년쯤 일겁니다. 실내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을 하다 떨어져 왼쪽 발목 인대 3개가 끊어 졌습니다. 병원을 찾았는데 두 곳은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고, 한 곳은 수술하면 다시 끊어지니 하지 말고 재활하자고 했어요. 전 후자를 택했죠. 한 1년 반 운동을 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발목을 강화하는 훈련을 많이 하게 됐고 부상이 없어야 운동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더 주의해서 운동을 하게 됐습니다.”
정재원 씨가 2022년 울주 트레일 나인피크 105km에 출전해 운문산 정상에서 포즈를 취했다. 정재원 씨 제공.
“그 즈음 대학 축제 때 5km 단축마라톤 대회가 열려 참가했는데 완주한 뒤 느낀 성취감과 희열이 저를 계속 달리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쯤 스포츠브랜드들이 5km, 10km 단축마라톤대회를 개최하고 있었고 적극 참가했습니다.”
달리기의 매력에 빠진 뒤 수업이 끝난 뒤 거의 매일 5~10km를 달렸다. 학교 캠퍼스와 서울 한강변을 주로 달렸다. 주말에는 20km 이상 중장거리를 달렸다. 그는 “술을 못 마셨기 때문에 저녁엔 늘 시간이 남았다”고 회상했다. 42.195km 마라톤 풀코스는 2007년 완주했다. 그해 가을 열린 대회에서 3시간47분대에 완주했다.
정재원 씨가 2021년 서울 둘레길 157km 대회에 출전해 질주하고 있다. 그는 36시간만에 완주했다. 정재원 씨 제공.
“힘겨웠지만 절대 잊을 수 없는 레이스였죠.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뛰면서 제가 어디를 뛰고 있고 잘 가고 있는 건지에 대한 두려움이 제일 컸습니다. 그런데 그런 막연함을 극복하고 골인 지점에 도착했을 때의 희열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정재원 씨가 2020년 제주 트렌스 트레일러닝대회에 출전해 한 오름을 오르다 포즈를 취했다. 정재원 씨 제공.
국내에서 열린 트레일러닝은 거의 빠지지 않고 다 뛰었다. 코리아 50K, 노스페이스 TNF 100, 서울 100K(서울 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50km, 서울둘레길 157km. 트렌스제주 트레일러닝 100km…. 서울둘레길 157km는 36시간에 완주했다. 21km를 달리며 온갖 장애물을 넘는 스파르탄레이스 비스트도 두 차례 완주했다.
“제가 국내에서 열리는 트레일러닝은 거의 다 완주했는데 울주 트레일 나인 피크는 두 번 출전해 다 포기했습니다. 2021년엔 80km에서 포기했습니다. 40km쯤에서 왼쪽 무릎 인대를 다쳤는데 참고 달리다 극한 상황에서 포기했죠. 인대 파열은 나중에 병원에 가서 알았습니다. 지난해에는 회사를 옮기고 하는 과정에서 운동을 제대로 못한 상태에서 나갔다가 60~70km쯤에서 자체 포기했어요. 천천히 달리면 완주는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완주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멈췄죠.”
정재원 씨가 2021년 스파르탄레이스 비스트21km에서 질주하고 있다. 정재원 씨 제공.
정재원 씨가 2019년 오사카마라톤에 출전해 질주하고 있다. 정재원 씨 제공.
정 씨는 2010년부터는 크라이밍도 병행하고 있다.
“중국에서 사업하는 친구를 보기 위해 상하이에 갔습니다. 제 친구가 클라이밍을 즐기더라고요. 그래서 따라 해봤는데 정말 짜릿하더라고요. 성취감도 큽니다. 그래서 달리기와 함께 병행하고 있습니다.”
태국과 스페인 등 크라이밍 명소에 가서 오르기도 했다. 실내외에서 즐기던 그는 2015년 사고이후엔 주로 실내에서만 클라이밍을 하고 있다. 그는 “트라우마가 생겨 야외에서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도 클라이밍의 짜릿함은 잊을 수 없어 실내에서 주기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재원 씨가 태국 크라비에서 클라이밍을 즐기고 있는 모습. 정재원 씨 제공.
“주말엔 집(경기도 고양시 일산) 근처 정발산과 호수공원을 주로 달립니다. 한양도성길도 달리고 불수사도북 5산도 달리고….”
부상당하지 않게 집에선 케틀벨 스윙으로 코어근육을 키워주고 있다. 아직 장애가 남아 있는 왼쪽 발목 보강운동도 빼놓지 않는다. 그는 “다친 경험이 더 몸을 조심하게 한다”고 했다. 클라이밍에 중요한 턱걸이 훈련도 틈틈이 한다.
“언젠가 나이 들면 지금같이 달릴 순 없을 겁니다. 하지만 나이에 맞게 속도나 강도를 낮추면 됩니다. 달리기의 희열, 평생 느끼면서 살고 싶습니다.”
정재원 씨가 2017년 고비사막마라톤에 출전해 태극기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정재원 씨 제공.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