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만화 ‘원펀맨’ ‘대머리 망토’ 원펀맨이 머금은 삶의 비애
만화를 통해 세상을 보려 합니다. 1965년 비틀즈 싱글 곡 ‘데이트리퍼(Day tripper)’는 “당일치기 여행자”를 일컫습니다. 만화를 본다는 건 잠깐 일상을 벗어나는 여행이니까요. 브라질 그래픽노블 ‘데이트리퍼’도 영감을 줬습니다. 이 만화엔 삶을 담는 소설가를 평생 꿈꾸지만, 실상은 죽음을 알리는 부고(訃告) 담당기자가 나옵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우리네 인생과 무척 닮지 않았나요.지구에서 아니 우주에서 제일 강해졌건만, 바뀐 게 없다. 여전히 수중엔 소고기 한번 실컷 사먹을 돈도 없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몸을 단련해 히어로가 된 ‘원펀맨’의 주인공 사이타마. 한데 너무 고됐던 탓일까. 초인의 힘을 얻는 대신 소중한 머리카락을 다 잃어버렸다. 결국 그의 히어로 활동명은 ‘대머리 망토’로 결정된다. 구글 이미지 캡처
3년의 고행 끝에 무소불위의 초인이 된 사이타마. 도대체 적수가 없다. 괴물이건 외계인이건 순식간에 때려 부순다. ‘북두신권’ 켄시로의 “넌 이미 죽어있다”처럼 멋진 대사도 읊고 싶고, 마블 히어로처럼 신나게 싸우며 기예도 뽐내고 싶건만. 그냥 다 원 펀치다. 영웅의 길이란 게…, 원래 이리 시금털털한 거였나.
지난해 9월 국내에 출간된 ‘원펀맨’ 26권. 몇년 전부터 이어진 히어로협회와 괴인협회의 대결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교보문고 홈페이지
곤궁한 살림살이와 안티히어로 운명. 스파이더맨과 배트맨의 설정이 살짝 묻어나는 원펀맨의 미학은 이 어이없을 정도로 엉켜 있는 ‘부조리’에 있다. 누구보다 강한 초인이 대중에게 외면 받으며 가난조차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대인배’ 사이타마는 부와 명예에 초연하지만, 얄궂게도 삶의 숨겨진 속살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다들 정의니 진실이니 그럴 듯한 말로 떠들어대지만, 우리 앞엔 사필귀정만 기다리지 않는다는 걸. 도시가 궤멸됐는데도 과거 사이타마를 내쫓았던 악덕 집주인의 빌라는 멀쩡한 것처럼.
만화 ‘원펀맨’의 등장인물은 대다수가 비장하다. 주인공 사이타마만 빼고. 물론 그 역시 진지할 때가 있지만, 대체로는 동네 아저씨 같은 느긋한 분위기가 풍긴다. 구글 이미지 캡처
실은 요즘 ‘원펀맨’이 흘러가는 모양새는 다소 아쉽다. 온갖 등장인물에 죄다 스토리와 캐릭터를 부가해, 이삼 일치 에피소드로 연재를 장장 3, 4년을 끌고 있다. 그게 ‘원피스’처럼 서사의 설득력을 갖췄다고 보기도 2% 부족하다. 다루는 얘기가 많다보니 사이타마는 주변인물로 전락한 느낌. 오히려 ‘드래곤볼’ 베지터를 똑 닮은 악인 가로우가 훨씬 돋보인다. 원펀맨은 언제나 한방에 끝내니 싸움이 뻔해지는 ‘태생적 한계’ 때문이겠으나…. 갈수록 배가 산으로 가는 형국이다.
지난해 7월 국내 출간된 ‘원펀맨’ 25권 표지. 교보문고 홈페이지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