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바라카 원전 관련 기업인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아니, 내가 언제?”… 했다가 나도 놀랐다. 열두 살 때도 내게 테러를 감행해 날 충격에 빠뜨리더니 이번엔 한국인에게 ‘아니’로 말을 시작하는 부정적 버릇이 있다는 충격 발언으로 에미를 단박에 아다다로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 코미디언 임희춘이 “아니, 그게 아니구요” 했던 게 생각난다. 아니 나는 부정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었다. 사전에는 ‘아니’에 부정이나 반대의 뜻도 있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에 쓰여 강조의 의미로 쓰이는 어법도 나와 있다. 아니 사실은, 아니 근데, 아니 내 말은, 아니 그게, 아니 있잖아…영어로 말하면 By the way! 아니, 라는 말을 안 하려니 그 담부터는 입을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 돈 쓰고 내 딸 모시고 힘들게 돌아와선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는 걸 발견하곤 만세를 불렀다. 국방부 전 대변인 부승찬이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2020년 12월 직을 맡았고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2년 4월 12일 마지막 브리핑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동아일보DB
● ‘아니’는 나만의 말버릇이 아니었다
부승찬은 작년 4월 1일 미사일전략사령부 개편식 행사 때 남영신 당시 육군총장이 화장실까지 쫓아와 이른바 도사라는 천공이 대통령직인수위 고위관계자와 함께 한남동 육군총장 공관과 국방부 영내에 있는 육군 서울사무소를 방문했다는 말을 했다고 ‘권력과 안보-문재인 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에다 썼다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로부터 고소를 당한 사람이다.그는 3일 KBS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나와 21분 55초간 방송하면서 무려 열아홉 번 ‘아니’를 말했다. 주진우와 주거니 받거니 한 것으로 치면, 우하하 줄잡아 1분에 한번 아니를 말한 거다. 그러니까 아니 아니 하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 관저. 동아일보DB
● 아니 공관장이 총장한테 허위보고 하겠냐고
방송을 시작한 주진우가 “대통령실에서 고발했더라고요, 바로. 어떻게 보셨어요?” 묻자 부승찬은 “아니①, 저는 김종대 전 의원과는 달랐죠”라고 곧장 ‘아니’를 발사했다. 본인도 의식 못 했을 거다. 그리고는 “그러다 보니까 저는 지금 고발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하고 이어갔다.주진우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한테 들었다는 거죠?” 묻자 부승찬은 “공관장이 자기 즉 남영신 총장한테 보고했다”고 답했다.
◆부승찬: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아니②, 용모를 보십시오. 흰 수염에 도포 자락 날리면 그게 말이 됩니까?
◇주진우: “말이 됩니까?” 그러는데 총장이 뭐래요?
◆부승찬: 아니③, 그러면 무슨 뭐 공관장이 허위 보고하겠냐고 총장한테.
부승찬 전 대변인이 쓴 ‘권력과 안보’ 책 표지.
● ‘아니’만 들어도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전체 말고 부승찬의 ‘아니’가 나오는 부분만 들어도 맥락을 알 수 있다는 건 중요하다. 아니가 들어간 부분은 화자가 강조하고픈 대목이어서다. 부승찬이 아니 하는 부분은 기실 그가 의식하지 않고도 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다. 그 부분만 발췌 소개한다.◆부승찬: 네, 핵심 인물 천공이 왔다. 저는요. 고발을 안 당할 자신 있는 게 뭐냐 하면 거기 뭐 경호처나 이런 사람들 저는 1도 관심 없어요. 이 사람들은 당연히 가야죠. 아니④, 의무잖아요.
◇주진우: 네, 네. 알아볼 수도 있죠.
◆부승찬: 아니⑤, 그건 당연한 거고 그건 1도 관심 없어요. 저는 민간인 천공이 핵심이고 나머지 분들 뭐 일면식도 없다. 제가 일면식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까?
◇주진우: 만약에 (CCTV) 공개했는데 천공이 안 나오거나 천공하고 관련이 없다면 책임을 지셔야죠.
◆부승찬: 아니⑥, 뭐 책임은 지는데 저도 기록…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겁니다.
◇주진우: 그래서 기록하셨어요?
◆부승찬: 아니⑦, 그래서 그때 당시 기록이었고 저장 날짜도 작년 4월이 마지막 저장이었고. 그러니까 이제 저는 그 기록을 가지고 아니⑧, 국방부의 어떤 군사 비밀을 제외한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천공 기록이 있는데 이걸 빼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죠.
◇주진우: 알겠습니다. 경호처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하고 있고요. 그런데 당시 CCTV를 빨리 공개하면 될 일인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데 부승찬 대변인을 고발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언론사 두 곳은 어떤 이유로 고발됐을까요?
◆부승찬: 아니⑨, 사실은 언론사 한쪽은 뉴스토마토죠.
◇주진우: 그러면 이 사실관계는 어떻게 밝혀야 됩니까?
◆부승찬: 아니⑩, 그러니까 이게 제가… 결국은 이제 총장님의 큰 결단이 저는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이고요. 그게 가장 우선시되고 그다음에 CCTV나 이런 것들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현행법들을 넘어서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겁니다.
◇주진우: 아무튼 참모총장께서 대변인하고만 얘기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대변인도 그 얘기를 듣고 혼자서 가슴을 끓이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부승찬: 아니⑪, 저는 그거는 명확히 말씀드리지만 지켰습니다.
◇주진우: 알겠습니다. 분명히 또 하기는 했을 텐데 이렇게 또 관저나 그리고 청사를 이렇게 기록하는 기록물들 있을 텐데. 카니발 승용차가 2대가 왔고 어디에 누가 탔고 그런 얘기까지 구체적으로 나왔어요?
◆부승찬: 아니요(이것은 부사가 아니어서 세지 않았다). 제가 들은 거는… 아니⑫, 그거는 뉴스토마토에서.
◇주진우: 알겠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천공 국회 청문회로 부르겠다.” 이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해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부승찬: 아니⑬, 그거는 어찌 됐든 지금 양분된 그런 국가적 분열 상태를 천공이라는 인물 하나로 해서 이렇게 되는 거는 정말 안타깝기 때문에 어찌 됐든 이거는 밝혀야 된다.
◆부승찬: 그렇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안 갔다는 뭐 육군공관 CCTV… 아니⑭, 지금은 안 되겠지만 그때 당시는…
◇주진우: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천공 의혹에 대해서 “김용현 경호처장한테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하더라. 폰이랑 CCTV 공개하겠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폰과 CCTV 공개할 것 같습니까?
◆부승찬: 아니요(이것도 세지 않음). 전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주진우: 안 할 것 같아요?
◆부승찬: 네. 아니⑮, CCTV에 대해서는 명확히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 거고요.
◇주진우: 대통령과 관련됐기 때문에?
◆부승찬: 아니⑯,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통령경호법과 개인정보보호법과 그다음에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서 이 법을 뛰어넘어야죠.
◇주진우: 그러면 그냥 하는 말입니까, 이거?
◆부승찬: 아니⑰, 저는 그거는 그냥 하는 말이라고 봐요.
◇주진우: 그래요?
◆부승찬: 네. 아니⑱, 본인들이 밝히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본인이 무슨 CCTV를 밝혀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핵심 관계자인 천공을 데려다 놓고 하면 돼요.
◇주진우: 아, 대통령경호법 이런 거 다 필요 없이 천공만 조사해 보면 된다?
◆부승찬: 아니⑲, 당사자는 안 나서고 왜 대통령실에서 실드를 쳐주냐 이거지.
● 아니 왜 천공은 조사 안하느냐고?
부승찬은 왜 천공을 직접 조사하지 않느냐고 했다. 조사는 아니지만 취재한 사람 있다. 신동아 기자 출신 프리랜서 기자 조성식이 작년 10월 24일 천공 측 정법시대 법무팀장에게 질의서를 보낸 거다. ‘조성식의 통찰’이 소개한 법무팀장의 마지막 답변은 “스승님이 답변하시지 않을 것 같으니 편하게 보도하시라”였다. 딱 부러지게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 정도면 천공의 육참총장 공관 방문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봐야 옳다. 심지어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조성식은 작년 11월 하순 정보공개 포털을 이용해 옛 한남동 육참총장 공관(현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과 외교부 장관 공관(현 대통령 관저) 및 육군 서울사무소의 출입자 명부와 CCTV 영상에 대한 정보공개를 국방부에 청구했다. 12월 11일 정보공개 요청에 대한 결정통지서가 날아왔는데 날짜를 가리고 알려드리면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육참총장 공관을 관리하는 국방부 근무지원단은 2022. *.**. ~ *.**. 국방부 청사 내 육군서울사무소/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외교부 장관 공관의 출입기록 및 CCTV 영상은 개인정보 보호법, 국방 정보공개 운영 훈령, 국방보안업무훈령에 따라 공개가 제한됨을 안내 드립니다.즉 공개 못 한다는 얘기다.
● 아니 영상을 쥐고 있는 건 정부 아닌가
대통령실은 3일 “중대한 의혹을 제기하려면 최소한 천공의 동선이 직‧간접적으로 확인되거나 관저 출입을 목격한 증인이나 영상 등 객관적 근거라도 있어야 한다”면서 부승찬과 기자들을 고발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