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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 아니, 대통령실이 기자들을 고발했다고?

입력 | 2023-02-05 14:00:00


2023년 2월 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바라카 원전 관련 기업인 오찬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엄마들의 로망은 딸과 친구 같은 엄마가 되는 거다. 딸들은 그렇지 않다. 친구 많은 그들은 성모마리아 같은 엄마를 원하지, 엄마와 친구처럼 놀기를 원치 않는다. 내 딸도 그랬다. 설을 끼고 딸과 휴가를 갔는데(그래서 도발을 2주 제꼈답니다^^;) 갑자기 “엄마는 왜 늘 ‘아니’ 하고 말을 시작해?” 하는 것이었다.

“아니, 내가 언제?”… 했다가 나도 놀랐다. 열두 살 때도 내게 테러를 감행해 날 충격에 빠뜨리더니 이번엔 한국인에게 ‘아니’로 말을 시작하는 부정적 버릇이 있다는 충격 발언으로 에미를 단박에 아다다로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옛날 코미디언 임희춘이 “아니, 그게 아니구요” 했던 게 생각난다. 아니 나는 부정적으로 말한 것도 아니었다. 사전에는 ‘아니’에 부정이나 반대의 뜻도 있지만 문장과 문장 사이에 쓰여 강조의 의미로 쓰이는 어법도 나와 있다. 아니 사실은, 아니 근데, 아니 내 말은, 아니 그게, 아니 있잖아…영어로 말하면 By the way! 아니, 라는 말을 안 하려니 그 담부터는 입을 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 돈 쓰고 내 딸 모시고 힘들게 돌아와선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는 걸 발견하곤 만세를 불렀다. 국방부 전 대변인 부승찬이다.

부승찬 전 국방부 대변인. 2020년 12월 직을 맡았고 윤석열 대통령 취임 직전인 2022년 4월 12일 마지막 브리핑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동아일보DB

● ‘아니’는 나만의 말버릇이 아니었다
부승찬은 작년 4월 1일 미사일전략사령부 개편식 행사 때 남영신 당시 육군총장이 화장실까지 쫓아와 이른바 도사라는 천공이 대통령직인수위 고위관계자와 함께 한남동 육군총장 공관과 국방부 영내에 있는 육군 서울사무소를 방문했다는 말을 했다고 ‘권력과 안보-문재인 정부 국방비사와 천공 의혹’에다 썼다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로부터 고소를 당한 사람이다.

그는 3일 KBS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나와 21분 55초간 방송하면서 무려 열아홉 번 ‘아니’를 말했다. 주진우와 주거니 받거니 한 것으로 치면, 우하하 줄잡아 1분에 한번 아니를 말한 거다. 그러니까 아니 아니 하는 건 나 혼자가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 관저. 동아일보DB

미리 밝혀두자면 이건 흉이 아니다. 글로 써놓고 보니 눈에 띄는 것이지 귀로 들으면 별로 어색하지도 않다(이번 기회에 각자의 언어습관을 점검해 보시어요. 참고로 대통령은 에, 에 하는 버릇이 있답니다). 천공의 관저 결정 개입설을 옳겨 썼다가 나까지 고소당할까 봐 분명히 밝히는데 이 글의 주제는 천공이 아니라 ‘아니’라는 부사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다(후덜덜)!
● 아니 공관장이 총장한테 허위보고 하겠냐고
방송을 시작한 주진우가 “대통령실에서 고발했더라고요, 바로. 어떻게 보셨어요?” 묻자 부승찬은 “아니①, 저는 김종대 전 의원과는 달랐죠”라고 곧장 ‘아니’를 발사했다. 본인도 의식 못 했을 거다. 그리고는 “그러다 보니까 저는 지금 고발당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하고 이어갔다.

주진우가 “남영신 육군참모총장한테 들었다는 거죠?” 묻자 부승찬은 “공관장이 자기 즉 남영신 총장한테 보고했다”고 답했다.
◆부승찬: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십시오.” 아니②, 용모를 보십시오. 흰 수염에 도포 자락 날리면 그게 말이 됩니까?
◇주진우: “말이 됩니까?” 그러는데 총장이 뭐래요?
◆부승찬: 아니③, 그러면 무슨 뭐 공관장이 허위 보고하겠냐고 총장한테.

부승찬 전 대변인이 쓴 ‘권력과 안보’ 책 표지.

● ‘아니’만 들어도 전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전체 말고 부승찬의 ‘아니’가 나오는 부분만 들어도 맥락을 알 수 있다는 건 중요하다. 아니가 들어간 부분은 화자가 강조하고픈 대목이어서다. 부승찬이 아니 하는 부분은 기실 그가 의식하지 않고도 절로 터져 나오는 감탄사다. 그 부분만 발췌 소개한다.
◆부승찬: 네, 핵심 인물 천공이 왔다. 저는요. 고발을 안 당할 자신 있는 게 뭐냐 하면 거기 뭐 경호처나 이런 사람들 저는 1도 관심 없어요. 이 사람들은 당연히 가야죠. 아니④, 의무잖아요.
◇주진우: 네, 네. 알아볼 수도 있죠.
◆부승찬: 아니⑤, 그건 당연한 거고 그건 1도 관심 없어요. 저는 민간인 천공이 핵심이고 나머지 분들 뭐 일면식도 없다. 제가 일면식 있다고 얘기를 했습니까?

◇주진우: 만약에 (CCTV) 공개했는데 천공이 안 나오거나 천공하고 관련이 없다면 책임을 지셔야죠.
◆부승찬: 아니⑥, 뭐 책임은 지는데 저도 기록… 그래서 기록이 중요한 겁니다.
◇주진우: 그래서 기록하셨어요?
◆부승찬: 아니⑦, 그래서 그때 당시 기록이었고 저장 날짜도 작년 4월이 마지막 저장이었고. 그러니까 이제 저는 그 기록을 가지고 아니⑧, 국방부의 어떤 군사 비밀을 제외한 내용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여기서 천공 기록이 있는데 이걸 빼고 갈 수는 없잖아요. 그것도 모양새가 이상하죠.

◇주진우: 알겠습니다. 경호처에서는 사실무근이라고 하고 있고요. 그런데 당시 CCTV를 빨리 공개하면 될 일인데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왜 그런데 부승찬 대변인을 고발하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언론사 두 곳은 어떤 이유로 고발됐을까요?
◆부승찬: 니⑨, 사실은 언론사 한쪽은 뉴스토마토죠.

◇주진우: 그러면 이 사실관계는 어떻게 밝혀야 됩니까?
◆부승찬: 아니⑩, 그러니까 이게 제가… 결국은 이제 총장님의 큰 결단이 저는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이고요. 그게 가장 우선시되고 그다음에 CCTV나 이런 것들을 공개하기 위해서는 현행법들을 넘어서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겁니다.

◇주진우: 아무튼 참모총장께서 대변인하고만 얘기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리고 대변인도 그 얘기를 듣고 혼자서 가슴을 끓이고 그러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부승찬: 아니⑪, 저는 그거는 명확히 말씀드리지만 지켰습니다.

◇주진우: 알겠습니다. 분명히 또 하기는 했을 텐데 이렇게 또 관저나 그리고 청사를 이렇게 기록하는 기록물들 있을 텐데. 카니발 승용차가 2대가 왔고 어디에 누가 탔고 그런 얘기까지 구체적으로 나왔어요?
◆부승찬: 아니요(이것은 부사가 아니어서 세지 않았다). 제가 들은 거는… 아니⑫, 그거는 뉴스토마토에서.
◇주진우: 알겠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천공 국회 청문회로 부르겠다.” 이런 얘기를 지금 하고 있습니다. 해법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부승찬: 아니⑬, 그거는 어찌 됐든 지금 양분된 그런 국가적 분열 상태를 천공이라는 인물 하나로 해서 이렇게 되는 거는 정말 안타깝기 때문에 어찌 됐든 이거는 밝혀야 된다.

◆부승찬: 그렇기 때문에 그때 당시에 안 갔다는 뭐 육군공관 CCTV… 아니⑭, 지금은 안 되겠지만 그때 당시는…
◇주진우: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국방위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는데 천공 의혹에 대해서 “김용현 경호처장한테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하더라. 폰이랑 CCTV 공개하겠다.” 이런 얘기를 했는데 폰과 CCTV 공개할 것 같습니까?
◆부승찬: 아니요(이것도 세지 않음). 전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주진우: 안 할 것 같아요?
◆부승찬: 네. 아니⑮, CCTV에 대해서는 명확히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을 거고요.
◇주진우: 대통령과 관련됐기 때문에?
◆부승찬: 아니⑯,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대통령경호법과 개인정보보호법과 그다음에 군사시설보호법에 따라서 이 법을 뛰어넘어야죠.
◇주진우: 그러면 그냥 하는 말입니까, 이거?
◆부승찬: 아니⑰, 저는 그거는 그냥 하는 말이라고 봐요.
◇주진우: 그래요?
◆부승찬: 네. 아니⑱, 본인들이 밝히는 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본인이 무슨 CCTV를 밝혀요.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핵심 관계자인 천공을 데려다 놓고 하면 돼요.
◇주진우: 아, 대통령경호법 이런 거 다 필요 없이 천공만 조사해 보면 된다?
◆부승찬: 아니⑲, 당사자는 안 나서고 왜 대통령실에서 실드를 쳐주냐 이거지.
● 아니 왜 천공은 조사 안하느냐고?
부승찬은 왜 천공을 직접 조사하지 않느냐고 했다. 조사는 아니지만 취재한 사람 있다. 신동아 기자 출신 프리랜서 기자 조성식이 작년 10월 24일 천공 측 정법시대 법무팀장에게 질의서를 보낸 거다. ‘조성식의 통찰’이 소개한 법무팀장의 마지막 답변은 “스승님이 답변하시지 않을 것 같으니 편하게 보도하시라”였다. 딱 부러지게 부인하지 않은 것이다. 이 정도면 천공의 육참총장 공관 방문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봐야 옳다. 심지어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조성식은 작년 11월 하순 정보공개 포털을 이용해 옛 한남동 육참총장 공관(현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과 외교부 장관 공관(현 대통령 관저) 및 육군 서울사무소의 출입자 명부와 CCTV 영상에 대한 정보공개를 국방부에 청구했다. 12월 11일 정보공개 요청에 대한 결정통지서가 날아왔는데 날짜를 가리고 알려드리면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다.
육참총장 공관을 관리하는 국방부 근무지원단은 2022. *.**. ~ *.**. 국방부 청사 내 육군서울사무소/ 한남동 육군참모총장 공관/ 외교부 장관 공관의 출입기록 및 CCTV 영상은 개인정보 보호법, 국방 정보공개 운영 훈령, 국방보안업무훈령에 따라 공개가 제한됨을 안내 드립니다.즉 공개 못 한다는 얘기다.
● 아니 영상을 쥐고 있는 건 정부 아닌가
대통령실은 3일 “중대한 의혹을 제기하려면 최소한 천공의 동선이 직‧간접적으로 확인되거나 관저 출입을 목격한 증인이나 영상 등 객관적 근거라도 있어야 한다”면서 부승찬과 기자들을 고발했다.

아니 영상을 쥐고 있는 건 정부인데 기자들한테 객관적 근거를 대라는 건 공정한가. 단언컨대 대통령 손바닥의 임금 왕(王)자부터 시작해 허연 머리 휘날리는 도사님 좋아할 ‘궁민’은 많지 않다. 정권의 비선실세라는 소리가 나오지 못하게 단속도 못 하면서 대통령실이 잘하는 건 기자들 고발뿐이다. 대통령실 만세다. 국정농단 의혹으로 번지는 사태를 막고 싶은가. 그러려면 천공을 잡으시라. 언론을 잡지 마시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