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중동만 다녀오면 ‘잭팟’ 홍보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 많아 尹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 자임 잠정적인 MOU 실적에 연연해선 안 돼
정용관 논설실장
2009년 12월. 코펜하겐 일정 후 귀국길에 오른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기내 간담회에서 흥이 난 듯 막걸리를 여러 잔 마셨다. 방금 전 아랍에미리트(UAE)의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왕세제로부터 “26, 27일 아부다비로 와 달라”는 전화를 받은 터였다. “프랑스로 결정 났는데, 더 이상 매달리면 망신”이라는 참모들의 만류에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얻은 바라카 원전 수주 최종 통보였다.
MB가 2011년 3월 원전 기공식 참석차 다시 아부다비를 찾았을 때 무함마드는 아부다비에서 200여 km 떨어진 리와 사막으로 MB를 깜짝 초대했다. 왕세제의 스위트룸이 있는 전용 호텔에서 둘은 극소수 수행원만 대동한 채 매사냥 체험을 하고 만찬을 함께 했다. 언론에는 사후에도 밝히지 않은 비공개 일정이었다. 수백억 달러의 비즈니스가 얽혀 있지만 둘의 관계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MB가 어떻게 무함마드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뒷얘기를 길게 설명하진 않겠다. 분명한 건 새 권력자들은 UAE 내 MB의 그림자가 달갑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때다. 방한한 무함마드가 퇴임한 MB와 오찬 약속을 잡았는데 정부 최고위급 인사가 같은 시간 점심을 하자며 끼어들었다. MB와 그대로 만나겠다고 할 수도 없고, 정부 쪽 사람을 만날 수도 없어 난감해진 무함마드는 “급한 일이 생겼다”는 핑계를 대고 오전에 한국을 떴다고 한다.
MB 시절 뻥튀기 양해각서(MOU)도 있었다. 자원외교 과대포장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UAE로부터 10억 배럴 이상의 유전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는 것도 한 예다. 10억 배럴은 약 110조 원 규모다. 다만 한국석유공사가 참여한 어느 유전에서 생산한 원유 10만 배럴이 2019년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왔다는 보도가 있는 걸 보니 일부 성과는 있는 모양이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제2의 중동 붐’에 꽂혔다. MB 색깔이 강하게 남아있는 UAE 대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다. 난데없이 이란이 중동의 마지막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2016년 이란을 국빈 방문해 60여 건의 MOU를 맺고 최대 456억 달러를 수주했다고 발표했다. ‘52조 원 잭팟 수주 발판’ ‘역대 최대 경제외교 성과’ 등이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실질적 성과로 이어진 사례는 찾기 힘들다. 문 정부도 중동 국가 등과 이런저런 MOU를 맺었지만 답보 상태인 경우가 많다.
윤석열 대통령의 UAE 방문을 계기로 또 ‘제2 중동 붐’ 얘기가 한창이다. 지금은 대통령이 된 무함마드가 “300억 달러 투자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어김없이 ‘UAE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 간 투자 결정’이란 설명이 잇따랐다. 통 큰 투자의 실체는 아직 알 수 없다. 대통령들이 중동만 다녀오면 대박, 잭팟, 역대 최대 규모, 수십 건의 MOU 체결 등의 얘기가 나왔지만 흐지부지된 전례가 많았다. 300억 달러 투자의 약속이 이행되길 진심으로 바라지만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임하고 나섰다. 원전 등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나 방산 수출 등은 최고 권력자의 의지, 고공 플레이가 중요하다. 그 점에서 문 전 대통령은 소극적이었다. MB는 ‘을’의 자세를 마다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세일즈 스타일은 잘 모르겠다. 일선 부처를 다그치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훗날 공허하지 않도록 잠정적인 MOU보다는 확실한 본계약 실적이 많아지도록 꼼꼼히 챙겨야 한다. 대통령실에 ‘해외 수주’ 관리 및 조정을 맡는 전담팀을 두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정용관 논설실장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