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하와이 1세대 이민자는 독립유공자… 사탕수수 농장서 번 돈 보태”

입력 | 2023-02-06 03:00:00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
“독립박물관에 묘비 탁본 49점 기증
방치 사적지 보존해 역사 기억해야”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은 3일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1903년 미국으로 처음 건너간 하와이 이민 1세대들이 어렵게 살면서도 힘을 모아 독립운동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기념관 제공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 속 인물인 방영근은 을사늑약 직전인 1904년 집안 빚 20원을 갚기 위해 ‘미지의 땅’ 하와이로 간다. 그리고 땡볕 아래 사탕수수 농장에서 고된 노동을 마친 저녁이면 아리랑을 부르며 눈물을 적신다. 이는 실제 1900년대 초 고국을 떠나 미국 하와이로 이주한 1세대 이민자들의 삶의 풍경이었다.

1903년 1월 13일 하와이로 노동이민을 간 102명의 ‘방영근’들로 시작된 미주 한인 이민 역사가 올해로 120주년을 맞았다. 지난해부터 국가보훈처 후원으로 1세대 이민자들의 묘비를 탁본한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82)이 탁본 49점을 기증하기 위해 3일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찾았다.

이날 이 소장은 독립기념관 겨레의집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하와이 1세대 이민자 모두가 독립유공자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하와이 초기 이민자 약 7400명 중 미주 본토로 건너가거나 환국하지 않고 남은 이민자는 4000여 명. 이 소장에 따르면 전명운(1884∼1947), 장인환(1876∼1930) 의사가 재판에 넘겨지자 하와이 이민자 2018명이 기금 모금에 참여했다. 안중근 의사(1879∼1910)의 재판기금 모금에도 1595명이 힘을 모았다.

하와이 초기 이민자 김성기 목사의 묘비 탁본. 독립기념관 제공

하지만 독립기념관에 따르면 하와이 초기 이민자 중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받은 사람은 70여 명에 불과하다. 이 소장은 최근 3년 동안 1세대 이민자들의 묘비 조사에 주력했다. 묘비를 통해 1919년 대한부인구제회 결성에 참여한 백인숙 선생(1873∼1949) 등의 신원을 파악하기도 했다. 백 선생은 한인신문 등에 활동이 기록돼 있지만 인적 사항은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소장은 “탁본에서 파악된 정보 등을 바탕으로 열두 분이 지난해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고 했다.

이 소장은 1963년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버클리)와 남캘리포니아대(USC)에서 각각 사회학·도시계획학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뒤 30년간 도시계획 전문가로 활약했다. 2004년 잘되던 사업을 접고 이민사 연구에 발을 들였다. 이 소장은 “호랑이가 없어 토끼가 왕 노릇을 한 것”이라며 몸을 낮췄다. “이민사를 정리하고 기념하는 일을 하려면 이중 언어를 구사하면서 주, 시 정부가 돌아가는 구조를 꿰고 있어야 했어요. 도시계획 분야에서 쌓아온 인맥이 이민사 연구에 도움이 됐죠.”

이 소장은 1926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주도해 하와이 빅아일랜드에 조성했던 ‘동지촌’ 숯가마 사업 터 관리를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동지촌은 사탕수수 농장을 떠난 한인 이민자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여의도 면적보다 넓은 약 960에이커(약 388만 ㎡)의 땅을 사 농사를 짓고 목장과 숯가마 등을 운영했던 곳이다. 국외 독립운동사적지로 지정은 됐지만 숯가마 내부 시설은 녹슬었고, 접근하는 길은 수풀이 우거진 상태다.

“방치되다시피 한 사적지를 지금이라도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120년 전 이민자들이 역경과 고초 속에서도 고국의 독립을 지원했다는 사실이 잊히지 않을 겁니다.”(이 소장)

천안=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