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미국이 ‘키 홀(Key Hole·열쇠구멍)’이라는 코드네임을 가진 최초의 첩보위성을 운용하기 시작한 것은 정찰기 U-2가 소련군에 격추된 사건 직후였다. U-2기 격추는 미소 정상회담 취소까지 낳으며 냉전 완화 기류에 찬물을 끼얹은 사건이었다. 데이터 전송이 불가능했던 당시로선 쏘아올린 지 한 달도 안 된 위성을 떨어뜨려 필름을 회수한 뒤 분석하는 고비용 방식이었지만 U-2 격추의 파장을 감안하면 가치 있는 투자였다. 그렇게 첩보위성의 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미국의 정찰용 풍선은 항공기와 함께 소련과 동구권 감시에 톡톡한 역할을 했다. 그때도 대외적 목적은 ‘기상 연구’였다.
▷4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유명 관광지 머틀비치를 찾은 이들은 심상찮은 굉음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영화 ‘탑 건’을 떠올릴 만한 광경을 목격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전투기 3대가 풍선 주변을 선회하더니 그중 한 대가 다가가 미사일을 발사했다. 폭음과 함께 찢어진 풍선은 그대로 바다로 추락했다. 중국 ‘정찰풍선’으로 의심되는 비행체가 일주일 동안 미 본토를 횡단한 뒤 최신예 스텔스전투기 F-22의 공대공미사일을 맞고 추락하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환호를 불렀다. 한 주민은 이렇게 전했다. “희고 동그란 공이 별안간 구겨진 크리넥스처럼 됐다.”
▷첩보 활동의 생명은 은밀함에 있다. 하늘에서의 정보 수집은 물론 온갖 위장수단을 동원한 스파이 작전도, 사이버 해킹에 의한 정보 탈취도 눈에 띄어선 안 되고, 들키더라도 발뺌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육안으로도 보이는 ‘정찰풍선’이 대놓고 미 영공을 침범했다. 물론 중국은 “우발적 사고”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이 정찰풍선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벌써 몇 년 전부터라고 미 국방부는 새삼 공개했다. 나아가 그 풍선이 민감한 군사기지, 특히 핵미사일 격납고 상공을 지나간 것에 미국은 주목하고 있다. 결국 정찰의 결정적 증거는 수거한 풍선 잔해 분석을 통해 밝혀낼 장비의 수준과 거기 담긴 정보에 달렸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