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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징용문제 풀 마지막 기회… 尹방일 맞추려 서둘러선 안돼”

입력 | 2023-02-07 03:00:00

신각수 前 주일대사
日기업 자산 현금화 이뤄지면, 강제징용 문제 돌이킬수 없어
日 먼저 수출규제 완화하고, 한국도 지소미아 복원 필요
한일은 전략적 파트너 관계… 美中 갈등속 세력균형 협력을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우리 국민도 왜 한일 관계가 개선되어야 하는지 조금씩 납득하기 시작한 것 같다”며 “정부가 노력해 강제징용 피해자와 여론의 반발이 줄어든다면 강제징용 협상에서 일본이 더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현재 한일 강제징용 배상 문제 논의는, 영어로 말하면 ‘Now or Never moment’다. 이번에 풀지 못하면 앞으로 절대 풀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기회가 더 중요하다.”

한일 관계 전문가로 꼽히는 신각수 전 주일 대사(사진)는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다만 그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일 시점을 정하고 이를 맞추기 위해 협상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했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인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윤 대통령의 방일을 포함한 한일 정상 간 셔틀외교는 강제징용 협상 타결과 상관없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는 1일 서울 종로구 신 전 대사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일문일답.》





●“강제징용 협상 타결, 尹 대통령 訪日에 맞출 필요 없어”
―정부가 강제징용 협상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 등을 대상으로 소송을 냈고, 2012년 대법원에서 피해자 승소 판결이 났다. 다만 배상 판결을 받은 미쓰비시중공업 등의 일부 자산 현금화가 지금은 멈춰 선 상태다. 잠시 시간이 생긴 것이기 때문에 이번에 해결을 해야 한다. 현금화가 이뤄진다면 강제징용 문제는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가 한일 관계 개선의 속도를 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 ‘한일 관계의 진전을 이루겠다’는 우리 정부의 강한 의지가 일본 측에도 전달이 됐고, 일본도 상당히 자세를 바꿨다. 지난해 9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한일 정상이 만나고,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또 한일 정상회담이 열린 것도 그런 맥락이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한일 국장급 협의에서 의견을 교환한 것도 이런 여건 개선이 영향을 미쳤다.”

―한일이 강제징용 문제를 고위급에서 논의하기로 했는지.

“국장급 회의는 실무선이니 당연히 논의를 다 끝낼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에서 일본의 협조가 필요한데, 지금 일본이 주저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정부도 일본이 협조를 해 줘야 피해자 등을 설득할 텐데 그게 지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본이 소극적인 배경이 있다면….


“우선 일본 국내 정치 상황을 봐야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지 않았다면 해결이 더 쉬웠을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자민당 내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구심점이 없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가 이끄는 그룹은 자민당 내에서 (규모로) 네 번째 정도다.”

―기시다 총리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서명한 당사자인데….

“그것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 본다면, 외상으로 일하면서 어렵게 이끌어 낸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무산되는 걸 봤다. 기시다 총리는 그런 일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있을 것이다.”

―다음 달로 예상되는 윤 대통령 방일에 맞춰 강제징용 협상의 결론을 내야 하나.

“외교라는 건, 시점을 정해놓고 하는 쪽이 지는 거다. 윤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 건 그 일정대로 하고, 협상은 협상대로 해야 한다. 협상 타결과 윤 대통령의 방일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서 신 전 대사는 “강제징용 협상과 상관없이 한일 셔틀외교는 하루빨리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사 문제 때문에 과거사 이외의 협력 사안을 늦춘다는 건 한일 간 상호 상실의 게임이 된다. 그래서 한일 간에 협력이 가능한 것부터 협력하면 양국 간 분위기가 개선되고, 신뢰가 생겨 문제를 푸는 게 쉬워진다”고 말했다.

●“야당도 한일 과거사 문제에 나서야”
―강제동원 해법에서 일본 피고 기업의 기금 참여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피고 기업은 참여를 해야 한다. 대신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2012년 처음 판결이 나왔을 때 미쓰비시는 기금을 내려고 했지만 일본 정부가 막았다. 그때와 지금이 똑같은 상황이니 (피고 기업이) 참여하면 된다.”

―일본의 사죄와 관련해 1995년 현직 일본 총리가 최초로 식민 지배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한다는 의견도 오간다.


“무라야마 담화를 되풀이한다, 확인한다는 식은 아닌 것 같다. 이 사안에 맞게끔 새로운 문안을 만들어야지. 강제동원 문제에 맞는 내용을 담은 문안을 못 만들 것도 없다.”

―일본은 수출 규제 완화를 강제징용 합의의 상응 조치로 검토하는 것 같다.

“상응 조치라고 하지 말고, 먼저 일본이 수출 규제 완화를 해야 한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는 강제동원 문제 때문에 시작된 게 아니다. 그러니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서 일본이 먼저 규제를 풀면 된다. 그럼 우리 정부는 한일 지소미아(GSOMIA·군사정보보호협정)를 복원한다고 발표하면 된다. 강제동원과 수출 규제 완화 등을 묶어서 ‘그랜드 바겐(일괄 타결)’으로 할 사안이 아니다.”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직접 접촉하겠다고 나섰다.

“정부가 나서서 그렇게 해야 한다. 정부가 피해자 및 피해자 지원 단체들과 활발히 소통하고, 설령 그분들이 만족을 못 하더라도 정부가 하고 있는 것들을 잘 설명해야 한다. 그럼 여론도 반응하게 될 것이고, 강제징용 문제를 푸는 큰 해결의 실마리가 생긴다.”

이어 신 전 대사는 “정부 여당이 야당과도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에도 문희상 박병석 전 국회의장, 강창일 전 주일 대사 등 (이 문제에) 중립적인 분들이 있다. 정부와 여당이 야당 인사들과 만나 의견을 듣고 설득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과거사 문제만큼은 초당적으로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北이 대화 테이블에 앉아야 ‘담대한 구상’도 작동”
―문재인 정부를 포함해 상당 기간 한일 관계가 어려움을 겪었다.

“인접 국가로 자유민주주의 법치 질서를 따르는 한일은 자연스러운 전략적 파트너다. 미중 갈등 시대에 우리가 중국과 세력 균형을 맞추려면 미국이 계속 동아시아에 관여를 해야 하고, 이를 위해 한일이 협력해야 한다. 한미일에 이어 한국-일본-호주, 한국-일본-인도 등 계속해서 네트워킹을 넓혀 가야 한다. 또 한국이 일본의 발전 경로를 상당 부분 비슷하게 밟아가기 때문에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많다.”

―윤석열 정부만의 대북 정책이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조정된, 실용적 접근’이라는 대북 기조는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비슷하다. 결국 북한을 비핵화 논의 테이블에 앉게 하기 위해 한미일이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고, 유럽이 동참하는 구도를 우리 정부가 주도해서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정부가 생각하는 ‘담대한 구상’도 작동할 수 있다.”

―중국과 대만 문제도 더 심각해지는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임기를 3기에서 끝내지 않을 거라 본다. 5년 후 4기까지 가려면 분명한 업적이 필요해 대만 통일을 노릴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우리도 한미 동맹에 입각해 유사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미리 짚어 봐야 한다. 일본은 이미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정한 ‘워 게임’을 여러 번 했다.”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방향은 잘 설정했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고, 한중 관계를 잘 관리하면서 인도태평양 전략에 우리가 살을 붙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인도,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구체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는 향후 외교 정책과 관련해 소규모 경비정, 7600t급 세종대왕함과 같은 구축함 등 군함을 예로 들었다. 신 전 대사는 “우리나라가 예전엔 경비정급이었다면 (국력 신장으로) 지금은 구축함급이 됐다”며 “문제는 방향 전환을 급하게 하면 구축함은 경비정보다 더 진폭이 크다”고 했다.

“단숨에 방향 전환을 하려 하면 부작용을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정부에 로마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투스의 ‘천천히 서둘러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충북 영동(68)
△서울고 △서울대 법학과
△서울대 대학원 법학 석사·국제법학 박사
△1975년 제9회 외무고시 합격
△외교부 조약국장
△주유엔대표부 차석 대사
△주이스라엘 대사 △외교부 1·2차관
△주일본 대사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