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용 여행작가가 들려주는 겨울 태백 이야기 새하얀 설경과 어우러진 주목군락… 양떼목장에선 산양과 힐링을 과거 탄광 광부들이 만든 음식인 태백 명물 ‘물닭갈비’도 인기
코로나19로 만끽하지 못했던 겨울왕국이 그리울 만도 하다. 이러다 진짜 봄이라도 오면 낭패다. 더 늦기 전에 이두용 여행작가(사진)와 함께 태백여행을 떠나보자. 여행은 일단 떠나면 절반은 성공한 거니까.
도시의 묵은 때, 산의 정기로 씻자
겨울 여행지로 태백시를 추천하는 이유는 단연 태백산에 있다. ‘눈꽃 산행’으로도 부르는 겨울 설 산행지로 태백산만 한 곳이 없다. 이두용 여행작가 제공
등산로를 따라 한참 오르다 보면 하늘이 열리면서 사방으로 눈 덮인 능선이 켜켜이 드러난다. 상고대가 감싼 나뭇가지들이 화려한 조각처럼 아름답다. 태백산엔 설경과 어우러진 주목군락이 볼거리다. 살아서 1000년, 죽어서 1000년을 산다는 주목들이 눈에 뒤덮여 비현실적인 풍광을 만들어낸다. 실제로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절경이다.
회색 빌딩 숲 도시에서 가져온 일상의 스트레스는 태백산 눈밭에 버려두고 오자. 계절과 자연이 선물한 추억은 태백을 떠올릴 때마다 미소 짓게 할 것이다.
산양과 뛰어놀며 동심으로 돌아가자
태백 산양목장.
겨울엔 눈으로 덮인 언덕 위를 새하얀 산양들이 뛰어다니는 걸 볼 수 있는데 양떼목장에서 보던 풍경과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산양목장도 국내에 여럿인데 능선이 이어진 언덕에서 양을 방목하는 곳은 이곳이 으뜸이다. 심지어 언덕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태백 시내 풍경도 장쾌하다. 말 그대로 ‘정상뷰 맛집’이다. 목장 입구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들르면 산양유도 맛볼 수 있다.
황부자 전설이 깃든 낙동강 발원지
우리나라에서 압록강과 두만강 다음으로 길고 남한에서는 가장 긴 낙동강. 이곳의 발원지가 태백의 중심가에 있다. 바로 황지연못이다. 해발 700m로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연못이기도 한 이곳은 둘레가 100m에 이르는 상지와 그 밑으로 중지, 하지로 연결돼 있는데 인공연못처럼 보일 정도로 정비가 잘돼 있지만 하루에 5000t의 물이 솟아 나오는 대단한 곳이다. 예부터 나라에 가뭄이 와도 절대 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알려졌다.
태백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있는 데다 공원으로 조성돼 찾기도 쉽고 쉬어 가기에도 좋지만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재미있는 전설도 한몫한다. 먼 옛날 이곳에 살던 황부자가 집으로 시주하러 온 노승에게 쌀 대신 쇠똥을 주었는데 이것을 본 며느리가 쌀 한 되를 시주하고 노승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노승은 황부자의 집은 곧 망할 것이니 자신을 따라오라고 하며 뒤를 절대로 돌아보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하지만 노승을 따르던 며느리는 큰 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았고 그 자리에서 돌이 됐다고 전해진다.
태백에 왔으면 ‘물닭갈비’는 먹고 가야지
태백 물닭갈비.
사실 우리가 먹는 닭갈비는 최초와는 다르다. 춘천 닭갈비는 원래 연탄불에 양념에 재운 닭의 갈빗살을 구워 먹는 요리였다. 이후 조리하기도 먹기도 좋게 변화하면서 지금의 닭갈비 요리가 전국으로 퍼지며 더 유명해졌다.
닭갈비는 태백의 명물이기도 하다. 들어는 봤는가. 물닭갈비.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얼핏 보면 닭볶음탕과 흡사해 먹어봤어도 모를 수 있다. 과거 탄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고기는 먹고 싶은데 소고기는 비싸서 국물과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를 찾다가 물닭갈비가 생겨났다고 한다.
고추장으로 간을 낸 국물에 닭고기와 떡, 당면 등을 넣어 끓이는데 닭볶음탕과 닮았지만 묘하게 구분되는 맛이 있다. 요즘은 겨울엔 냉이를 듬뿍 넣고 다른 계절엔 깻잎을 넣어 감칠맛을 낸다. 춘천닭갈비와 태백물닭갈비의 공통점이 있는데 다 먹은 뒤엔 밥을 볶아 먹는다는 것이다. 마지막 한 수저까지 맛있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