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강한 의지보다 치료가 필요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우울’은 평소 느끼는 것보다 좀 가라앉아 있는 감정적인 반응 혹은 상태를 말한다. 사람들이 흔히 경험하게 되는 감정 중의 하나다. 어제 어떤 복잡한 문제 때문에 기분이 좀 가라앉았다. 그런데 오늘은 좀 회복됐다면, ‘우울증’이 아니다. 하지만 그 우울감이 2주 이상 지속되면서 여러 가지의 일상생활과 기능 발휘에 영향을 줄 정도라면 ‘우울증’이라고 본다. 물론 이 외 다른 여러 진단 기준이 있지만 우선 중요한 기준은 그렇다.
우울증의 종류는 두 가지로 크게 나눠 보기도 한다. 그중 하나는 ‘내인성 우울증’으로 딱히 이유가 없는데 우울감이 길어지는 것이다. 이 우울증은 갑상샘에 호르몬 이상이 생긴 것처럼 몸 안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인해 생겨난다. 다른 하나는 ‘외인성 우울증’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우울’한 이유가 외부 요인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상실’이라고 느끼는 종류는 굉장히 다양하다. 사람마다 상실이라고 느끼는 것의 상징적인 의미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이 상징적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특성 때문이다. 따라서 우울감을 느끼는 포인트는 매우 개인적이다. 인간 개개인마다 느끼는 어떤 고유의 상실과 관련된 것, 그것이 건드려질 때마다 우울해질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지키고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관계였던 사람과의 해결되지 않는 결핍이 있거나 공허함이 있을 때는 기본적으로 상당한 우울감이 깔려 있을 수도 있다.
대개 어떤 상황에 대한 우울감은 그 상황이 지나가면 좀 회복이 된다. 좀 쉬고 가까운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면 좀 나아진다. 그런데 그렇지 않을 때는 자신이 언제부터 우울해졌는지, 무슨 일 때문인지, 그것이 자신에게 어떤 상실감을 주었는지, 이 상실감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의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지 등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아야 한다. 과거의 삶과 연결된 내 마음의 어려움을 알아차려 보는 것이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그때는 빨리 전문가를 찾아가 봐야 한다.
우울감은 그냥 기분이 좀 가라앉은 상태로 끝나지 않는다. 우울감을 느낄 때, 우리 대뇌에서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 상태가 된다. 이것이 우리 몸의 생리적인 것, 인지적인 것에도 영향을 준다. 수면, 식사, 체중, 기억력 등을 비롯한 모든 생리기능과 인지기능 등에 변화를 주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리면 며칠 두고 보다가 심해지는 것 같거나 너무 오래가면 병원에 간다. 그것과 비슷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울감’이 ‘마음의 감기’라면 ‘우울증’은 ‘마음의 독감’이다. 감기나 독감도 몸이 이겨낼 때까지 증상을 완화시켜주는 약을 쓰듯, 우울증도 그래야 한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 증상을 좀 완화시키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처리해 나갈 힘이 없기 때문이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 우울증을 겪었던 아이나 성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우울증은 그 자체도 힘들지만 그보다 더 괴로웠던 것은 의지가 약해서 우울증이 낫지 못하는 것이라는 주변의 잘못된 시선이었다고 한다. 지금 내가 심한 독감에 걸려 열도 나고 온몸이 아파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의지를 가지고 강하게 마음을 먹으면 안 그럴 텐데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라고 한다면 선뜻 그 말에 동의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우울증은 뇌신경 전달물질의 불균형 상태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의지가 약해서, 못나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런 말들은 우울증을 더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정말 조심해야 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