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못넘는 국정과제 법안] 주민지원 근거 법안 없어 겉돌아 저장시설 포화땐 원전 멈출수도 한수원, 임시 저장시설 건립 추진
“법안 통과가 아닌 공청회 하나를 열기 위해 장관부터 일선 사무관까지 의원실을 100번 넘게 들락거렸다.”
산업통상자원부 당국자는 지난달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주최로 열린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 제정 공청회 추진 과정을 이렇게 말했다. 국회법상 법안을 제정하기 위해선 국회 상임위원회 공청회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지난해 9월부터 개별 의원실을 방문해 공청회 개최 협조를 요청했다. 그는 “통상적인 국회 공청회 개최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했다.
고준위 방폐물 특별법은 원자력발전소 가동 후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 처분하는 시설을 마련하는 게 골자다. 처분시설을 가동하기 전까지 원전 외부에 ‘중간 저장시설’을 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정부는 1978년 첫 원전인 고리 1호기 상업운전 이후 40년간 9차례에 걸쳐 처분시설 선정을 시도했지만, 주민 반발에 부닥쳐 실패했다. 주민 지원 방안 등을 체계적으로 담은 근거 법률이 없었던 영향이 컸다.
방폐물 처분시설 확보 없이는 원전을 계속 운영하는 게 불가능하기에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선 여야 간 이견이 없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예컨대 여당은 원전 내 임시 저장시설의 용량을 최대한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이에 반대한다. 원전 내 저장시설을 통해 방사능 유출이 우려된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현재 사용후핵연료는 각 원전 내 습식 저장시설(사용후핵연료를 수조에 저장)에 임시 보관돼 있다. 추가 저장시설이 없다면 2031년 한빛 1호기를 시작으로 원전 내 저장시설이 줄줄이 포화돼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급한 대로 건식 저장시설(사용후핵연료를 콘크리트 등에 저장)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특별법에 규정된 중간 저장시설이나 처분시설로 옮기기 전 사용후핵연료를 임시로 보관하는 곳을 마련하려는 것. 이에 7일 한국수력원자력은 올해 첫 이사회에서 고리 원전 부지 안에 건식 저장시설을 건설하는 내용의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고리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수조가 2031년에 포화된다는 전망에 따른 것이다.
세종=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