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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결 대학 등록금, 인상 이어질듯

입력 | 2023-02-09 03:00:00

일부대학 인상에 이주호 “유감”에도
교육부 차관 “추가 제재 없다” 밝혀
대학들 “인플레 악화에 더는 못버텨”
국가장학금 포기하고 인상 저울질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올해 등록금 인상을 감행하는 일부 대학들을 향해 “유감”이라고 8일 밝혔다. 하지만 뚜렷한 등록금 인상 억제 정책을 내놓지는 못해 ‘읍소에 가까운 경고’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립대들 사이에서 지난 15년간의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악화를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등록금을 인상하는 대학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간 교육부는 물가 상승률을 잣대로 등록금 인상률을 눌러왔지만, 인플레이션(급격한 물가 상승)이 악화되면서 이마저도 힘을 잃은 모양새다.
●교육부, “유감” 표현하면서 “추가 제재 없다”
이날 이 부총리는 교육부의 ‘2023년 맞춤형 국가장학금 지원 기본계획’ 발표 자료를 통해 “올해 등록금을 동결 또는 인하한 대학에 감사드리고, 교육부 정책 기조에 동참하지 않고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는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 등록금 책정을 논의 중인 대학은 등록금 동결·인하를 유지해 교육부 정책 기조에 동참해 주기를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부총리가 대학들을 향해 ‘유감’이라는 표현까지 쓴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전날(7일) 교육부는 이번 기본계획을 정부세종청사에서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직접 발표하겠다고 공지했다. 애초 교육부 일정에는 없던 일정이었다. 일각에서는 “등록금 인상에 뛰어드는 대학들이 점점 늘자 정부가 급하게 경고성 메시지를 내놓기 위해 마련한 자리 아니겠느냐”는 관측도 나왔다.

장 차관은 8일 등록금을 올린 대학들에 대한 조치가 있느냐는 질문에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 대한 추가 제재나, 동결 또는 인하한 대학을 위한 인센티브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고등교육법상 대학은 ‘직전 3개년’ 물가 상승률 평균의 1.5배까지 등록금을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범위 내에서조차 등록금을 올리는 대학은 거의 없었다. 학부 등록금을 올리면 교육부가 국가장학금Ⅱ를 지원하지 않는 식으로 불이익을 줬기 때문이다. 그간은 물가 상승률이 낮았기 때문에 대학 입장에서는 교육부의 뜻을 거스르고 등록금을 인상하는 것보단 국가장학금Ⅱ를 받는 편이 더 이익이었다.
●계산기 두드리는 대학들, 인상 유인 커져 그런데 지난해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시작된 글로벌 경제 위기가 국내에서도 고(高)물가로 이어지자 등록금 인상률 법정 상한선도 4.05%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국가장학금Ⅱ을 받지 못해도 법정 상한선까지 등록금을 올리는 편이 더 이익인 셈이다.

올해 등록금을 3.95% 인상한 동아대의 경우 과거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으로 약 20억 원을 지원받았지만, 등록금을 올리면 약 50억 원의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등록금 인상이 30억 원 이익인 셈이다. 물가가 현재처럼 오르면 내년도 등록금 인상률 상한은 5%대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여기에 교육부가 ‘추가 제재는 없다’고 밝히면서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할 유인이 더 커졌다.

8일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가 조사한 191개 대학 중 12곳(6.3%)이 올해 등록금을 인상하기로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8곳은 국공립 교대다. 지난달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설문조사에서 대학 총장 114명 중 39.5%(45명)가 ‘내년(2024학년도)에 인상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올해 1학기’(10명)와 ‘2학기’(1명)라는 응답을 더하면 절반(49.1%)가량이 내년까지 등록금을 올리는 셈이다.

재정 한계에 부딪힌 대학들이 부총리의 등록금 동결 요구에 얼마나 호응할지는 불확실하다. 대교협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공시 기준 4년제 일반대 평균 등록금은 1인당 약 679만 원으로, 등록금 규제를 내놓기 직전인 2008년 대비 1.0% 높은 수준이다.

서울의 한 사립대 총장은 “장학금 제한 외에 추가 불이익이 없다면 다들 등록금 인상을 위해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대학 규제 철폐를 강조하면서 등록금만 15년째 묶어 두는 것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권 대학의 교무처장은 “대학이 처한 재정적 어려움을 뻔히 알면서 정치적 유불리만 따지며 등록금 규제 완화를 저울질하고 있다”며 “정부가 대학들을 헷갈리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