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매매와 관련된 조선 시대 고문서. 전북대
18살에 도주한 조선시대 노비가 도망친 후 90년 간 붙잡히지 않았다는 내용의 조선시대 문서가 발견됐다. 드라마 ‘추노’ 속 한 장면이 240년 전 고창 지역에서 그대로 일어난 것이다.
김도형 전북대 국문학과 교수가 9일 공개한 ‘고창 함양 오씨 문중(門中·같은 조상 자손)’의 짧은 고(古)문서에서 이 같은 내용이 발견됐다. 전북대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있었다. 이 문서는 당시 노비 매매 중개인 오재삼(吳再三)이 조선 정조 13년(1789년) 9월 3일 오씨 종중(宗中) 대리인 노비 운노미(雲老味)에게 전달한 수기(手記) 약정(約定) 문서다.
도망 노비 곱덕의 아버지 최곳대는 양인(천인이 아닌 서민)이었다. 하지만 정조 7년(1783년) 전국에 닥친 흉년으로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어지자 노비 거간(居間)꾼 오재삼에게 셋째 딸 곱덕을 매매했다. 최곳대는 함께 뱃 속의 아이까지 넘길 것을 약속하며 자식들을 팔아 값을 챙겼다. 오재삼은 조선 정조 8년(1784년) 3월 11일 오씨 문중과 노비 매매 거래를 맺었다. 그러나 5년 뒤 곱덕이 도망을 가며 보증인으로서 큰 책임을 지게 됐다.
곱덕과 관련된 고창 함양 오씨 문중 문서들. 전북대
문서에는 ‘1784년 3월 노비로 들인 최곳대의 삼녀 곱덕이 1789년 8월 25일(음력) 밤을 틈타 도주한바 오는 10월 5일까지 곱덕을 붙잡아 오겠다. (노비 매매 과정에서) 신뢰를 저버릴 일을 했다면 관청에 고발이 돼 엄한 형벌을 받게 되더라도 달게 받겠습니다’고 적혀있었다.
하지만 오씨 문중의 호적단자(집안 구성원과 노비 목록을 기록한 문서)에 따르면 곱덕은 108세가 되는 고종 16년(1879년)까지 ‘도망 노비’였다. 곱덕은 90년 가까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언뜻 보면 실용적인 문서로 보이는 노비 매매 문서, 호적단자, 약정 문서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연구하면 조선 시대 생활 모습과 특정 인물에 대한 미시적인 분석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면서 "또 이런 연구 자료는 문화 콘텐츠의 기초 자료로서 가치도 크다”고 강조했다.
이어 “곱덕의 이야기는 고문서에 찾을 수 있는 극히 일부 이야기”라며 “고문서에는 조선시대판 병역 비리, 집안 재산 싸움, 고단했던 과부의 삶 등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 자료가 숨겨져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