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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유성열]지하철 무임승차 논란, 해법은 정부가 쥐고 있다

입력 | 2023-02-10 03:00:00

유성열 사회부 차장


‘서울시는 23일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65세 이상 노인의 지하철 승차요금을 전액 면제 조치했다.’

1984년 5월 23일 자 동아일보 사회면(10면)에 실린 기사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노인 복지 향상과 경로사상을 높이기 위해 65세 이상 노인들의 지하철 운임을 면제토록 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후 정부와 서울시가 즉각 이행한 것이다.

전 전 대통령이 무임승차를 지시한 법적 근거는 노인복지법에 있다. 노인복지법은 1981년 제정 당시부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65세 이상에 대해 수송시설을 무료로 또는 할인해 이용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다만 무료화 여부와 할인율은 정부가 시행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1980년 어버이날(5월 8일) 정부가 경로우대제를 시행하면서 70세 이상에게 50% 할인을 적용한 것이 무임승차의 단초가 됐다. 이듬해 노인복지법 시행으로 노인 연령이 65세 이상으로 확대됐고, 1982년부터 65∼69세도 할인 혜택을 받게 됐다. 이어 1984년 전 전 대통령이 무임승차를 지시하자 정부는 할인율 100%로 시행령을 개정했는데, 이렇게 시작된 무임승차는 39년간 유지돼 왔다.

최근 무임승차를 둘러싼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고령화로 무임승차 비용이 급증하면서 지하철 운영 적자가 심해지고 있어서다. 2021년 서울교통공사의 무임승차 비용은 2784억 원으로 전체 적자(9385억 원)의 30%에 육박했다. 서울시는 무임승차가 대통령 지시로 시작됐고, 정부가 시행령으로 할인율까지 못 박고 있는 만큼 정부가 비용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구시는 무임승차 연령 하한을 아예 70세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는 “지하철 운영은 지자체 사무”라며 지자체가 알아서 할 일이란 입장이다. 추경호 부총리는 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노인복지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지방시설에 필요한 경로우대 관련 무상 요금, 할인 등을 (자체) 운영하게 돼 있다”며 “지자체가 운영하는 시설에 대해 나라가 (필요 재원을) 메워 달라는 건 맞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무임승차 지원 예산 3585억 원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지만 기획재정부가 강하게 반대하면서 본회의는 통과하지 못했다.

정부 지원 문제는 기재부와 서울시의 입장이 워낙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섣불리 결론 날 것 같지 않다. 노인 기준 연령을 높이는 것 역시 고령층의 반발이 거센 데다 정년 연장, 연금 개혁 문제와 얽혀 있어 성급히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노인복지법과 시행령이 노인 연령과 할인율까지 정하고 있기 때문에 자체 조례로 연령을 높이거나 할인율을 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정부가 지원할 수 없다면 지자체는 할인율이라도 줄이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 정부가 시행령을 개정해야 가능하다. 정부는 ‘지자체 사무’라고 뒷짐만 질 게 아니다. 비용 보전이든, 시행령 개정이든, 노인 연령 상향이든 정부가 직접 나서야 할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