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암 말기에서 임종기로 넘어갈 때 환자 상태가 안 좋아서 입원하게 되면 가족들이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좋았어요. 그때는 3주에 한 번씩 항암주사 맞으면서 통원 치료하고 어머니가 일상생활을 그럭저럭 다 하셨어요. 그때는 그때가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입원하게 되고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그때가 좋았던 것 같아요.”
우리는 살면서 ‘그때가 좋았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결이 다를 수는 있지만 아이 키우는 일도 그렇다. 나는 초등학생, 고등학생 아이가 있는데, 그보다 어린아이를 둔 젊은 후배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아이 키우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아이가 집에서 이러이러한 만행을 저질렀다, 큰애가 둘째를 때렸다, 온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등등. 나는 이미 겪어 본 일이어서 담담하게 듣는다. “응, 그래. 미운 일곱 살?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조금 있으면 중2병이 올 거야. 더 키워 봐. 지금이 좋은 때야. 밉긴, 얼마나 예뻐. 지금 아이 사진 많이 찍어놔. 금방 큰다. 곧 알게 돼.”
우리는 이번 생이 처음이라 늘 지금이 버겁다. 만일 인생을 한 세 번쯤 살아봐서 자녀 키우는 일도 몇 번 해보고, 대학도 몇 번 보내 보고, 결혼도 몇 번 시켜보고, 암에도 몇 번 걸려보고, 암에 걸려서 이렇게 죽는 거구나 하는 일도 몇 번 겪어 보면,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생은 처음이고, 지금 이 순간도 늘 처음이다. 처음은 늘 낯설고 버겁다.
그래서일까? 임종기가 다가오며 보호자가 ‘그때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나는 꼭 말해준다.
“나중에 돌아가시고 나면 ‘그때가 좋았다’며 오늘 이 순간을 그리워할 때가 또 올 거예요. ‘그때는 그래도 어머니 살아 계셨는데’ 하면서요.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잘 보냅시다.”
그렇다. 아무리 지금이 힘들어도 지나고 나서 보면 그때가 좋았다. 힘들면 힘들어서 좋았고, 안 힘들면 안 힘들어서 좋았다.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사실 모든 날이 좋았다.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