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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비인 줄 알았는데 ‘대장암 말기’…완치 특효약은 ‘긍정 에너지’ [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입력 | 2023-02-10 12:00:00


민병욱 고려대 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와 노승덕 씨가 말기 대장암 완치 2년을 기념하며 커피로 건배하고 있다. 노 씨는 세 번의 수술과 항암 치료를 이겨내고 7년 만에 대장암을 극복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노승덕 씨(74)는 1990년대까지 전북 군산에서 화공약품 유통업체를 운영했다. 한때 꽤나 돈을 벌었다고 한다. 하지만 1997년 들이닥친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폐업의 후유증은 컸다. 우선 사는 게 힘들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와도 이혼해야 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래도 넋 놓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택시 회사에 취직했다. 매일 12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았다. 끼니를 거르는 것은 다반사였다. 퇴근하면 술로 공허한 마음을 달랬다.

지독한 변비가 생겼다. 그러려니 했다. 그 다음에는 복통이 뒤따랐다. 약을 사 먹으면 참을 만 하다가 사흘 정도 지나면 버틸 수 없을 만큼 아팠다. 2014년 초 동네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진료의뢰서를 써 주며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의사는 암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노 씨는 진료의뢰서에 적혀 있는 ‘cancer(암)’라는 단어를 똑똑히 봤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항암 치료 후 극적으로 수술 가능해져 

오상철 고려대 구로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말기 대장암이라도 항암 치료와 수술을 통해 완치할 수 있다며 투병 의지를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노 씨는 2014년 3월 고려대 구로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대장암이었다. 변비와 복통이 대장암의 증세였던 것이다. 암은 이미 간으로 전이돼 있었다. 게다가 간의 여러 부위에 넓게 퍼져 있었다. 흔히 말기라 부르는 4기 대장암이었다.

민병욱 대장항문외과 교수, 오상철 종양내과 교수, 최새별 간담췌외과 교수 등이 모여 치료법을 논의했다.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 먼저 항암 치료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오 교수는 “항암 치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완치를 기대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민 교수 또한 “솔직히 완치를 기대할 수 없을 만큼 상태가 안 좋았다”며 “작은 기적이라도 바라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노 씨가 낙담할까 봐 걱정이 컸다. 하지만 노 씨는 의외로 차분했다. 당시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노 씨는 “의료진의 선택을 믿고 따르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항암 치료가 시작됐다. 2주마다 병원을 찾아 집중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힘든 4개월이 흘렀다. 치료 성적표를 확인할 시간. 컴퓨터단층(CT) 검사를 했다. 놀랍게도 간으로 전이됐던 암 세포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수술이 가능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간의 60%를 절제할 경우 남은 간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였다. 그래도 최선의 방법이었다. 의료진은 간의 60%, 대장의 30%를 절제하는 수술을 동시에 진행하기로 했다. 그해 8월 노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세 차례의 수술도 거뜬히 극복

최새별 고려대 구로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는 다학제 진료에 참여해 노승덕 씨의 간 절제 수술을 담당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먼저 최 교수가 간 절제술을 시행했다. 최 교수는 “수술 전부터 출혈을 가장 우려해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항암 치료를 오래하면 지방간염이 심해진다. 이 경우 수술 도중 출혈이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우려는 현실이 돼 버렸다. 간을 절제한 부위에서 출혈이 시작됐고, 좀처럼 지혈이 되지 않았다. 지혈을 하느라 2시간이면 끝날 간 절제 수술이 5시간으로 길어졌다. 이어 대장 절제 수술을 할 차례였다. 하지만 수술을 더 진행하면 환자가 위험해질 수 있었다. 결국 대장 수술은 시도하지도 못했다.

민 교수가 노 씨에게 수술 과정을 찬찬히 설명했다. 의료진으로서는 나중에 추가 수술을 해야 하기에 환자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 씨는 “알아서 최적의 판단을 한 것 아니냐”며 의료진에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간 절제 수술 결과는 좋았다. 회복 속도도 빨랐다. 덕분에 3개월 만에 대장 절제 수술을 할 수 있었다. 민 교수가 집도했고, 대장의 30% 정도를 잘라냈다. 이로써 암 세포가 있는 간과 대장 수술이 모두 끝났다.

수술이 잘됐으니 암에서 완전 해방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던 중 간에서 작은 암 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이때가 2016년 2월이었다. 마지막 수술도 잘 끝났다. 이어 10개월 동안 진행된 마지막 항암 치료도 무사히 끝났다.

이후 더 이상 암 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 수술을 시행하고 5년이 지난 2021년 2월 민 교수는 노 씨에게 완치 판정을 내렸다. 이후 그는 암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년마다 추적 검사를 받고 있다.
●환자의 긍정 마인드가 최고의 특효약

4기 대장암 환자였던 노승덕 씨는 “의료진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긍정 에너지를 잃지 않는다면 말기 암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민 교수와 오 교수는 “노 씨는 4기 대장암이라도 항암 치료와 수술을 통해 완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사실 암 진단을 받으면 많은 환자들이 절망에 빠진다. 일단 이 점에서 노 씨는 확실히 달랐다. 민 교수는 “노 씨는 암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항상 쾌활했고 에너지가 넘쳤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 씨는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 과정을 묻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별로 힘든 게 없었는데…”라고 답했다. 세 번의 수술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그게 내 팔자라고 생각했다.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그랬던 것”이라며 웃었다.

투병 기간 내내 노 씨는 최대한 음식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냉면을 먹어도 곱빼기로 먹었다. 소화가 잘 안 되면 소화제를 먹었다. 민 교수는 “암 환자들이 잘 못 먹는 반면 노 씨는 외부에서 음식을 공수해서라도 먹었다”며 “그런 적극적인 투병 의지가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치료를 받는 과정에서 오히려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더욱 강해졌다. 마지막 수술이 끝난 후 병실을 찾아온 어린 손녀의 입맞춤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이후로 더 살고 싶다는 바람이 한층 강렬해졌단다.

삶의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마지막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컴퓨터를 배웠다. 어느덧 3년째. 이젠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또한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강의도 한다.

다만 요즘 들어 만성 질환에 대한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서 당뇨병과 심장질환의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운동을 시작했다. 제자리팔벌려뛰기를 틈틈이 한다. 날이 풀리면 야외 산책도 할 계획이란다.
●“대장암 투병 중에도 육류 먹어야”

민병욱 고려대 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는 일주일에 1, 2회 육류를 먹어도 대장암 발병 확률이 높아지지 않는다며 단백질 보충을 위해 고기를 충분히 먹어줄 것을 당부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항암 치료를 받는 중에는 음식이 종종 제한된다. 가령 날로 된 음식은 절대 금물이다. 게다가 식욕도 떨어진다. 노 씨 또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95㎏이던 체중이 60㎏까지 빠졌다.

당시 노 씨가 가장 생각났던 음식 중 하나가 커피다. 요즘에는 매일 한두 잔을 꼭 마신다. 괜찮은 걸까. 민 교수는 “대장암 재발을 걱정하며 커피를 안 마실 필요는 없다. 여러 잔을 마시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루에 두 잔 정도까지는 괜찮다”고 말했다.

적색 육류가 대장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민 교수는 “이 또한 잘못 알려진 상식”이라고 했다. 고기가 주식(主食)인 서양인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민 교수에 따르면 밥을 주로 먹는 한국인은 매주 1, 2회 고기를 먹어도 대장암 발병이나 재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걱정 때문에 고기를 기피하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단백질이 부족해지면서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특히 수술 후 회복 단계에는 고기를 먹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날로 된 음식도 대장암과는 무관하다. 민 교수는 “회를 먹고 싶은데 참는 환자들이 있다. 그럴 때면 넉넉히 먹으라고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특정 음식을 피하기보다는 균형 있는 식사를 하는 게 암에 맞서는 식단이라는 것이다.

물론 피해야 할 음식도 있다. 너무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 가공육은 대장암뿐 아니라 다른 암도 유발할 수 있으니 가급적 적게 먹거나 피하는 게 좋다. 특히 술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대장암에서 해방됐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알코올 성분이 대장암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괜찮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막걸리 또한 술이다. 노 씨 또한 한때는 매일 술을 먹는다 해서 ‘노상술’이란 별명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한 잔도 입에 대지 않는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