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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장택동]“독립한 아들에게 준 50억 퇴직금은 뇌물 아니다”

입력 | 2023-02-10 22:02:00


은퇴하는 직장인에게 퇴직금은 최후의 보루이지만 그리 넉넉하지는 않다. 지난해 한국 직장인 평균 연봉인 4204만 원을 기준으로 했을 때 30년간 일한 뒤 받을 퇴직금은 1억 원 정도다. 그런데 화천대유에서 대리와 과장으로 단 6년 일한 곽상도 전 의원 아들 병채 씨는 성과급 명목으로 50억 원의 퇴직금을 챙겼다. 곽 전 의원의 뇌물 혐의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됐다. 시민들은 허탈함과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납득이 안 된다”고 비판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는 김만배 씨가 “병채 아버지는 돈 달라 하지, 병채 통해서. 며칠 전에도 2000만 원”이라고 말했다는 대목이 있다.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돈을 요구했다는 취지의 전언(傳言)이다. 녹취록이 아니더라도 대장동 개발 민간업자들이 별 이유 없이 일개 사원에게 퇴직금 50억 원을 줬다고 여길 사람은 없다. 국회의원인 아버지를 봐서 준 돈이라는 의심이 드는 게 당연하다.

▷검찰은 화천대유가 하나은행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곽 전 의원이 힘을 써준 대가로 의심했다. 그런데 언제, 누구에게 청탁했는지를 끝내 입증하지 못해 알선수재는 성립되지 않았다. 남은 것은 뇌물 혐의였다. 곽 전 의원이 국민의힘 부동산특위 위원으로 활동했던 만큼 대장동 개발과 직무 관련성이 있다는 점은 법원도 인정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법원은 “병채 씨가 독립해 생계를 유지했다”며 곽 전 의원에 대한 뇌물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한 법조인은 “유력 인사들에게 ‘직접 100억 원을 받을래, 아니면 자녀에게 50억 원을 줄까’라고 묻는다면 모두 후자를 택할 것”이라고 했다. 법망을 피하기 쉽고 세금 문제도 해결돼서다. 병채 씨가 받은 50억 원의 실체가 모호했다면 아버지에게 줄 돈을 아들에게 전달해 일종의 ‘우회 증여’를 한 게 아닌지 의심해보는 게 합리적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부분을 파고들지 않았다. 법원 역시 “성과급 50억 원은 지나치게 많다”면서도 ‘왜’라는 부분에 대해선 언급이 없었다. 세간에선 “신종 편법 증여 수단”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국민 법감정과 크게 괴리된 판결이 나왔다는 것은 어디엔가 허점이 있었다는 얘기다. 곽 전 의원은 검사 20년에 대통령민정수석까지 지낸 수사 베테랑이다. 물증을 들이대도 빠져나갈 길을 찾을 텐데 검찰이 제시한 증거는 대부분 녹취록과 진술이었다. 법원 역시 법리에만 매달리다 상식과 동떨어진 판결을 내놨다. “검사도 판사도 못 믿겠다”는 비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항소심에서는 검찰과 법원 모두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