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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마음’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문어에게 물었다

입력 | 2023-02-11 03:00:00

신경망 가진 동물은 무엇이든 감각-동작 기반으로 자아 인지
가능한 상황 미리 상상해보며, ‘마음’이라는 큰 도약 이뤄
◇후생동물/피터 고프리스미스 지음·박종현 옮김/464쪽·2만2000원·이김



문어(왼쪽 사진)는 감각과 동작의 많은 부분을 8개의 다리에 위임한다. 반면 어류에서 비롯된 척추동물은 한곳에 신경계가 집중되어 있으며 이는 신체 활동의 개방성과 신속함으로 이어졌다. 작은 사진은 어류인 대왕바리.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2018년부터 스위스에선 살아있는 바닷가재를 끓는 물에 넣어 요리하면 처벌받는다. 갑각류도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2020년 공개된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문어와 인간 사이의 교감과 우정을 담아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진화의 계통수에서 우리와 멀리 떨어진 동물들도 마음이 있을까.

책의 제목은 일반인에게 낯설다. 후생(後生)동물이란 ‘다세포동물’과 비슷한 개념이다. 원서의 부제 ‘동물의 삶과 마음의 탄생’을 염두에 두면 저자의 의도가 한층 쉽게 다가온다.

호주 시드니대 과학사와 과학철학 담당 교수인 저자는 “‘인간 외의 동물에게도 마음이 있나’라는 질문은 ‘예’나 ‘아니요’로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정신은 조금씩 나타났다는 점진주의가 그의 답이다. 의식 또는 정신은 종(種)에 따라 ‘더’ 또는 ‘덜’ 존재하며, 각각의 종이 가진 필요에 따른 것이지 우월하거나 열등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는 신경망을 가진 동물이라면 주체성과 행위자성을 가진다고 말한다. 주체성은 개체가 얻는 경험, 즉 감각이다. 행위자성은 외부에 일으키는 것, 즉 동작이다. 하등해 보이는 동물도 자신이 일으킨 진동이나 전기 등을 외부에서 일어난 일과 분리해 이해한다. 자아를 인지하는 것이다.

‘과학자 스쿠버다이버’로 유명한 저자는 기대대로 문어에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문어는 영리하다고 알려진 동물 중 인간과 계통적으로 멀어 비교하기 좋다. 우리처럼 호기심을 느끼고 장난을 치며 스트레스를 받는다. 흥미로운 점은 신경의 3분의 2가 여덟 개의 다리에 있어 각 다리의 움직임은 거의 그 다리가 독립적으로 맡는다는 것이다. 문어에게는 ‘1+8’개의 마음이 있는 걸까?

이 책은 ‘정신이 빠르게 오가는 것’이라는 해석을 지지한다. 인간의 좌뇌와 우뇌가 독립적으로 활동하지만 두 뇌를 연결하는 뇌량(腦梁)을 통해 의식을 조합하는 것과 같다. 문어도 집중된 행동이 필요할 때는 각 다리의 행동을 그치고 집중한다.

정신이 감각과 동작이란 실제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면서 마음은 큰 도약을 이뤘다고 저자는 본다. 가능한 상황을 미리 시뮬레이션해 앞으로의 일에 대비하게 된 것이다. 인간 외의 포유류도 꿈을 꾸며 갑오징어도 인간처럼 두 수면 모드의 교차가 일어난다. 인간이 다른 점은 시뮬레이션을 의도적으로 제어한다는 데 있다. 의식적으로 상상을 해서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인간에게 마음이란 가능성을 시험해 보고 지어내 보며 이미지를 조작해 볼 수 있는 장(場)이 되었다.

과학적이면서 철학적인 질문 하나가 남았다. 신경의 활동은 우리의 어디로 ‘보내져’ 마음을 이루는 것일까. 저자는 “정신이란 세포 활동의 연결과 전기적 호흡의 출렁이는 리듬이며 물질과 에너지의 배열과 활동이다. 이 활동의 결과로 정신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활동 자체가 바로 정신”이라고 설명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