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민병욱 고려대 구로병원 교수-대장암 노승덕 씨 수술 불가 4기암 진단 뒤 항암치료… 넉달간 사투 끝 암세포 극적 감소 간 절제때 출혈 심해 고비 맞기도… 3차례 힘든 수술 이기고 끝내 완치 노씨, 의료진 믿고 차분한 대응… 음식섭취 등 적극적 자세 큰효과
민병욱 고려대 구로병원 대장항문외과 교수와 노승덕 씨가 말기 대장암 완치 2년을 기념하며 커피로 건배하고 있다. 노 씨는 세 번의 수술과 항암 치료를 이겨내고 7년 만에 대장암을 극복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노승덕 씨(74)는 1990년대까지 전북 군산에서 화공약품 유통업체를 운영했다. 한때 꽤나 돈을 벌었다고 한다. 하지만 1997년 들이닥친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폐업의 후유증은 컸다. 우선 사는 게 힘들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와도 이혼해야 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그래도 넋 놓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아이 셋을 키우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택시 회사에 취직했다. 매일 12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았다. 끼니를 거르는 것은 다반사였다. 퇴근하면 술로 공허한 마음을 달랬다. 지독한 변비가 생겼다. 그러려니 했다. 그 다음에는 복통이 뒤따랐다. 약을 사 먹으면 참을 만하다가 사흘 정도 지나면 버틸 수 없을 만큼 아팠다. 2014년 초 동네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진료의뢰서를 써 주며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의사는 암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노 씨는 진료의뢰서에 적혀 있는 ‘cancer(암)’라는 단어를 똑똑히 봤다.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
●항암 치료 후 극적으로 수술 가능해져
노 씨는 2014년 3월 고려대 구로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대장암이었다. 변비와 복통이 대장암의 증세였던 것이다. 암은 이미 간으로 전이돼 있었다. 게다가 간의 여러 부위에 넓게 퍼져 있었다. 흔히 말기라 부르는 4기 대장암이었다. 오상철 고려대 구로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말기 대장암이라도 항암 치료와 수술을 통해 완치할 수 있다며 투병 의지를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세 차례의 수술도 거뜬히 극복
최새별 고려대 구로병원 간담췌외과 교수는 다학제 진료에 참여해 노승덕 씨의 간 절제 수술을 담당했다. 고려대 구로병원 제공
민 교수가 노 씨에게 수술 과정을 찬찬히 설명했다. 의료진으로서는 나중에 추가 수술을 해야 하기에 환자에게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 씨는 “알아서 최적의 판단을 한 것 아니냐”며 의료진에게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간 절제 수술 결과는 좋았다. 회복 속도도 빨랐다. 덕분에 3개월 만에 대장 절제 수술을 할 수 있었다. 민 교수가 집도했고, 대장의 30% 정도를 잘라냈다. 이로써 암 세포가 있는 간과 대장 수술이 모두 끝났다. 수술이 잘됐으니 암에서 완전 해방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차례의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던 중 간에서 작은 암 세포가 발견된 것이다. 이때가 2016년 2월이었다. 마지막 수술도 잘 끝났다. 이어 10개월 동안 진행된 마지막 항암 치료도 무사히 끝났다.
이후 더 이상 암 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마지막 수술을 시행하고 5년이 지난 2021년 2월 민 교수는 노 씨에게 완치 판정을 내렸다. 이후 그는 암 재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년마다 추적 검사를 받고 있다.
●환자의 긍정 마인드가 최고의 특효약
민 교수와 오 교수는 “노 씨는 4기 대장암이라도 항암 치료와 수술을 통해 완치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줬다”고 말했다. 사실 암 진단을 받으면 많은 환자들이 절망에 빠진다. 일단 이 점에서 노 씨는 확실히 달랐다. 민 교수는 “노 씨는 암 환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항상 쾌활했고 에너지가 넘쳤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 씨는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 과정을 묻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별로 힘든 게 없었는데…”라고 답했다. 세 번의 수술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그게 내 팔자라고 생각했다. 좋은 결과를 얻으려고 그랬던 것”이라며 웃었다. 투병 기간 내내 노 씨는 최대한 음식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했다. 냉면을 먹어도 곱빼기로 먹었다. 소화가 잘 안되면 소화제를 먹었다.
삶의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마지막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컴퓨터를 배웠다. 어느덧 3년째. 이젠 간단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됐다. 또한 6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강의도 한다. 다만 요즘 들어 만성 질환에 대한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나이가 들면서 당뇨병과 심장질환의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동을 시작했다. 제자리팔벌려뛰기를 틈틈이 한다. 날이 풀리면 야외 산책도 할 계획이란다.
●“대장암 투병 중에도 육류 먹어야”
항암 치료를 받는 중에는 음식이 종종 제한된다. 가령 익히지 않은 날음식은 절대 금물이다. 게다가 식욕도 떨어진다. 노 씨 또한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95㎏이던 체중이 60㎏까지 빠졌다. 당시 노 씨가 가장 생각났던 음식 중 하나가 커피다. 요즘에는 매일 한두 잔을 꼭 마신다. 괜찮은 걸까. 민 교수는 “대장암 재발을 걱정하며 커피를 안 마실 필요는 없다. 여러 잔을 마시면 문제가 되겠지만 하루에 두 잔 정도까지는 괜찮다”고 말했다. 적색 육류가 대장암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민 교수는 “이 또한 잘못 알려진 상식”이라고 했다. 고기가 주식(主食)인 서양인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민 교수에 따르면 밥을 주로 먹는 한국인은 매주 1, 2회 고기를 먹어도 대장암 발병이나 재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걱정 때문에 고기를 기피하는 게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다. 단백질이 부족해지면서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민 교수는 “특히 수술 후 회복 단계에는 고기를 먹는 게 좋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날음식도 대장암과는 무관하다. 민 교수는 “회를 먹고 싶은데 참는 환자들이 있다. 그럴 때면 넉넉히 먹으라고 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특정 음식을 피하기보다는 균형 있는 식사를 하는 게 암에 맞서는 식단이라는 것이다.
물론 피해야 할 음식도 있다. 너무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음식, 가공육은 대장암뿐 아니라 다른 암도 유발할 수 있으니 가급적 적게 먹거나 피하는 게 좋다. 특히 술은 절대 먹어서는 안 된다. 대장암에서 해방됐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알코올 성분이 대장암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막걸리는 괜찮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막걸리 또한 술이다. 노 씨 또한 한때는 매일 술을 먹는다 해서 ‘노상술’이란 별명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한 잔도 입에 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