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미라전’ 10만 관객 돌파 투탕카멘 좌상 등 유물 250여점… 남녀노소 눈높이에 맞춰 풀어내 주말 8000명 찾아… 입장까지 2시간 “현지서 보던 것보다 더 짜릿”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이집트 미라전’을 12일 찾은 관람객들이 왼쪽에 놓인 ‘아멘호테프의 미라 덮개’를 바라보고 있다(위 사진). 고대 이집트 유물 250여 점을 선보이는 국내 최대 규모의 이번 전시는 11일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했다. 이날 딸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한성길 씨(아래 사진의 오른쪽)가 기원전 722년∼기원전 525년경 만들어진 ‘이티의 내관’을 살펴보고 있다. 김재명 base@donga.com·이소연 기자
“언젠가 이집트에 가는 게 엄마 꿈이거든요. 전시를 통해 이집트를 먼저 만나실 수 있게 제가 예매했어요.”
국내 최대 규모의 이집트 유물 전시인 ‘이집트 미라전: 부활을 위한 여정’이 열리고 있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11일 전시장을 찾은 길민주 씨(26)는 어머니 오경숙 씨(57)와 함께 온 이유를 말했다. 모녀는 몰려든 인파에 2시간 반 동안 전시장 위층에 있는 대기실에서 입장을 기다렸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길 씨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오길 잘했다”며 감탄했고, 오 씨는 “딸 덕분에 이집트 구경을 해보네”라며 미소 지었다.
지난해 12월 15일 개막한 ‘이집트 미라전’이 이날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했다. 이날 전시장은 기원전 722년∼기원전 655년경 만들어진 목관 ‘호르의 외관’이 놓여 있는 전시장 입구부터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주말에는 하루 평균 4000여 명이 전시장을 찾는다.
●깊이 있고도 쉽게… 남녀노소 인기
이집트 사후세계관을 다룬 이번 전시는 고대 이집트 역사를 전문적이면서도 쉽게 풀어내 나이에 상관없이 만족스럽게 즐길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전시는 2만5000점이 넘는 이집트 컬렉션을 소장한 네덜란드 국립 고고학박물관의 유물 중 인간·동물 미라 13점, 미라 관 15점, 투탕카멘 좌상과 오시리스·이시스 조각상 등 유물 250여 점으로 구성됐다. 컴퓨터단층촬영(CT)으로 미라 내부의 미스터리를 푼 모습도 국내 최초로 볼 수 있다. 미라를 CT로 촬영하는 기술은 네덜란드 국립 고고학박물관의 최신 연구 성과 중 하나다.
고대 이집트 신화와 역사를 풀이해주는 실감영상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의 눈높이에도 맞춰 어린이·청소년 관람객 수가 3만6097명에 이른다. 이날 이집트 피라미드 실감영상을 보던 노건우 군(9)은 “이집트에 놀러 온 것 같다”며 눈을 떼지 못했다. 바닥에 앉아 한참 동안 영상을 보던 노 군은 “한국사에 관심이 많은데 이집트 역사를 이렇게 자세히 공부하는 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고대 이집트 신화를 담은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화면 앞에는 20명 넘게 모여 있었다. 전지원 양(10)은 어머니 윤진선 씨(36)가 “다른 유물을 보러 가자”고 해도 꼼짝하지 않았다. 5분간 영상을 다 본 후 발걸음을 옮긴 전 양은 “엄마, 옛날 이집트에는 왕을 대신해서 신전을 돌봐주던 사람들이 있었대!”라며 신관(神官)의 의미를 설명했다. 윤 씨는 “복잡한 이집트 신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설명해주니 아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며 웃었다.
●이집트 다녀온 이들도 “명품 전시”
고대 이집트 고위층의 목관 10점이 둥근 원을 이루며 세워진 전시 3부는 이집트에 다녀온 이들도 명품으로 꼽는 전시의 하이라이트다. 전시장 중앙에 놓인 ‘하이트엠헤트의 관’ 앞에 선 최지혜 씨(42)는 목관 위에 새겨진 문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기원전 722년∼기원전 332년경 후기 왕조 시대에 만들어진 이 목관 표면에는 사자(死者)를 사후세계로 안내하는 주문과 화려한 꽃무늬 장식이 가득했다. 최 씨는 “20년 전 이집트 카이로박물관에서 이런 목관들을 본 적이 있다”며 “유물 수는 현지 박물관이 더 많지만 전시 구성과 상세한 설명은 ‘이집트 미라전’이 훨씬 더 훌륭하다”고 말했다.
딸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한성길 씨(83)도 무역회사에서 근무하던 1985년 이집트에서 미라와 목관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한 씨는 “고대 이집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다”며 “미라를 만드는 방법까지 설명해줘 이 전시가 현지보다 더 알찬 것 같다”면서 “딸이 ‘아빠 따라 오길 잘했다’고 말했다”며 웃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