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 빅이슈’의 첫 번째 원고인 만큼 밝고, 긍정적인 내용을 다뤄보고 싶었다. 그런데 슬그머니 덮고 넘어가기에 사안이 너무 컸고, 아쉬움이 짙었다. 국제무대에서 지워진, 냉정히 표현해 ‘죽어버린’ 한국축구 외교에 대한 이야기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이 이달 초 바레인 마나마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총회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평의회 위원 선거에 낙선한 충격이 여전하다. 과거 FIFA 집행위원회를 대체한 평의회는 다양한 국제축구 현안을 의결하는 최고 기구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 뉴시스
이렇듯 정 회장이 사실상 꼴찌로 선거를 마친 가운데 셰이크 아마드 칼리파 알 타니(카타르)가 1위를 찍었고 일본축구협회장인 다시마 고조가 39표로 뒤를 따랐다. 이어 야세르 알미세할(사우디아라비아)이 35표, 마리아노 아레네타 주니어(필리핀)가 34표를 얻었다. 다툭 하지 하미딘 빈 하지 모흐드(말레이시아·30표)가 5위. 여기에 바레인 출신의 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칼리파 AFC 회장은 단독 입후보해 연임에 성공했다.
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칼리파 현 AFC 회장. AFC 홈페이지
그런데 정 회장은 아시아권의 주류 세력과 반목해왔다. 안 그래도 2011년 FIFA 부회장 선거에서 요르단 왕자에게 밀려 재선에 실패한 정몽준 KFA 명예회장 시절부터 갈등의 골이 깊었는데, 지금은 도저히 좁힐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 회장을 지지한다고 알려진 서아시아 회원국은 이란 등 극히 일부인데, 전체 판을 보면 ‘왕따’에 가깝다.
반면 다시마 회장은 영리했다. 정 회장과의 친분이 두터우면서도 중동 카르텔과의 관계도 비교적 끈끈했다. 또한 일본 기업들은 AFC 후원사로 활동 중이고 유소년, 프로리그, 지도자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아시아 개발도상국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 기업들이 일찌감치 증발한 것과 전혀 다르다. 그래서인지 ‘일본은 동아시아 축구의 리더’라는 인식이 깊이 박혀있다.
2027년 초까지 국제무대에서 사라지게 된 한국축구가 향할 길은 명확하다. 일단 바닥부터 다져가야 한다. 중동과는 껄끄럽고, 동아시아에서도 입지가 약하며 아세안에게도 다가서지 못하는 어정쩡한 지금의 상황이 반복돼선 안 된다. 굽힐 때는 과감히 굽히고, 취할 부분은 정확히 취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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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능한 참모’ 역시 반드시 필요하다. 유감스럽게도 정 회장 주변에는 국제 정세를 정확히 읽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며 활동할 만한 사람이 없다. 분명 이름값이 높은 축구 인들은 적지 않은데 KFA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축구계 일각에선 임기가 2년 남은 정 회장의 이른 ‘레임덕’ 현상을 우려한다. 하지만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남장현 스포츠동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