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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돌려줄 돈 없다” 부실 유전펀드에 또 혈세 1864억

입력 | 2023-02-14 03:00:00

내달 만기 ‘패러렐유전펀드’ 환매연기… 운용사 “貿保에 보험금 청구해 청산”
해외자원개발펀드 9건중 5건 손실… 野홍정민 “철저한 검토 없이 보증 탓”
“위험 크지만 지원 이어져야” 의견도




유망 해외자원개발펀드로 꼽히며 출시 당시 1조 원에 달하는 뭉칫돈이 몰렸던 ‘패러렐 유전펀드’의 만기가 올해 3월로 다가왔지만 투자자들에게 돌려줄 돈이 없어 환매 시점을 2년 연장하기로 했다. 투자 대상인 미국 텍사스 유전 매장량을 애초에 잘못 추정한 데다 유가 전망도 어긋나면서 대규모 손실을 냈기 때문이다.

결국 운용사는 펀드를 보증한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에 수천억 원의 보험금을 청구해 펀드 청산에 나설 예정이다. 정부가 철저한 사업성 검토 없이 고위험·대규모 해외자원개발펀드 사업을 보증한 탓에 국민 혈세만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자원개발펀드 손실에 혈세 6000억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은 8일 운용 중인 ‘패러렐 유전펀드’ 관련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환매 시점을 최대 2025년 3월 말까지 연기하는 내용의 안건을 승인했다고 공시했다. 미국 텍사스주에 있는 육상 유전에 투자하는 ‘패러렐 유전펀드’는 중도에 환매할 수 없는 폐쇄형 공모펀드다. 배당소득을 분리 과세하는 데다 운용사와 판매사들이 연평균 11%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홍보하면서 2013년 공모 당시 4000억 원 모집에 청약금 9416억 원이 몰렸다.

하지만 패러렐 유전의 추정 매장량과 생산량이 줄면서 지난해 말 기준 펀드의 순자산가치는 1427억 원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나마도 향후 펀드 지분 매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은 3900만 달러(약 498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투자리얼에셋운용 관계자는 “3월 말 손실이 확정되면 곧바로 무보에 보험금을 청구하고 펀드를 조기에 청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보험금이 지급되면 투자자들은 원금의 85%까지 돌려받을 수 있다.

무보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홍정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6년 이후 진행한 해외자원개발펀드보험 사업 9건 가운데 4건에서 손실이 발생해 이미 3억2230만 달러(약 4115억 원)를 보험금으로 지급했다. 여기에 손실이 확정적인 ‘패러렐 유전펀드’에도 최대 1억4600만 달러(약 1864억 원)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것이다. 해외자원개발펀드 손실에 최대 6000억 원 상당의 혈세가 빠져나가게 된 셈이다. 홍 의원은 “철저한 사업성 검토 없이 무리하게 해외자원개발펀드 보증 사업이 이뤄진 탓에 수천억 원의 세금이 낭비됐다”고 지적했다. 현재 무보의 보험금 창구인 투자위험보증계정 잔액은 6억3600만 원에 불과하다. 정부가 올해 투자위험보증 예산 1391억 원을 편성했지만 손실이 더 커질 경우 이걸로는 부족해 예비비를 추가 편성해야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해외자원개발 자체는 정권 관계없이 지속해야”

해외자원개발펀드보험은 해외자원개발사업에 민간 투자를 촉진하고자 2006년 11월에 도입됐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인 2008년부터 제도가 활성화됐지만 정권이 바뀐 뒤 자원외교가 ‘적폐’로 낙인찍히면서 유명무실해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해외자원개발사업비의 최대 30%까지 지원하는 해외자원개발 특별융자사업 예산은 2008년 4260억 원에서 2021년 349억 원으로 감소했다. 올해 예산은 1754억 원이지만 투자위험보증사업(1391억 원)을 제외한 융자지원액은 363억 원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대규모 손실이 줄줄이 발생한 만큼 사업성 검토 능력은 고도화되어야겠지만, 해외자원개발 지원 사업 자체는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종근 서울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한국도 일본처럼 국제유가 수준이나 정권에 관계없이 안정적으로 해외자원개발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정부가 해외자원개발사업의 옥석을 가릴 수 있는 역량을 강화하는 한편 일선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