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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에 빚 안 남기려면 재정준칙 도입해야[기고/이인호]

입력 | 2023-02-14 03:00:00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최근 들어 재정적자가 매년 100조 원씩 쌓이고 있다. 적자 누적으로 재정 건전성이 훼손되는 상황을 사전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대부분의 선진국에는 도입돼 있는데, 우리나라에만 아직 없다. ‘재정준칙’이 그것이다. 재정준칙이란 재정수지, 국가채무 비율 등 재정지표에 대한 구체적 목표를 수치로 정해 통제·관리함으로써 국가의 재정 건전성을 달성하고자 하는 규범을 말한다.

정부가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재정준칙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하되, 국가채무가 GDP의 60%를 초과할 때는 2% 이내로 관리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2022년 GDP 대비 5% 수준인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 수준인 3% 이내로 개선하면서도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한 지출은 충분히 반영할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재정준칙은 다양한 측면에서 반드시 도입돼야 할 제도다. 먼저 재정준칙은 과도한 정부 지출을 억제해 정부부채의 확대를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한다. 현재 가계·기업부채 규모는 GDP 대비 221.1%(2022년 3월 말 기준)로 상당히 큰 상황이다. 앞으로 정부부채마저 크게 늘어날 경우 한국에 대한 대외 신인도가 하락하고 우리 경제의 기초 체질이 약화될 우려도 있다.

과도한 재정적자는 민간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금리가 올라가고 시장 자금이 정부로 흘러 들어간다. 결국 그만큼 민간 분야의 투자가 구축(Crowd-out)된다. 민간의 자율성, 창의성 등 시장논리에 따라 보다 생산적이고 혁신적인 분야에 사용되어야 할 투자 자금이 의도치 않게 줄어드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나랏돈은 조세수입이 아닌 이상 미래 세대, 즉 우리의 아들딸들이 대신 갚아 나가야 할 빚이다. 따라서 재정은 근본적으로 세대 간 자원 배분 문제다.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자녀가 쓸 돈까지 당겨쓰고 빚만 남겨주려 하진 않는다. 그런데 국가 차원에서는 이러한 행태가 발생할 수 있도록 보고만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당장 돈을 빌려 쓰고자 하는 유인을 제도적으로 억제하고, 빚으로 빚을 돌려 막는 부당한 관행을 끊어내기 위해 재정준칙은 필요하다.

재정준칙이 도입되면 한국의 재정수지 비율이 예측 가능한 범위 내로 유지돼 한국 정부에 대한 신뢰성을 제고시키고 경제 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의 채무 비율을 예측하기가 더 쉬워지는 만큼 대외 신인도 상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국채 금리 하락에 따른 이자 부담 완화, 민간투자 확대를 통한 역동적 경제성장 등 경제 전반의 선순환을 이끌어 낼 것으로 보인다.

재정 건전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는 것은 정치적 쟁점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정적 미래를 위해 필요한 중요 과제다. 미래 세대에게 빚이 아닌 곳간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여야 간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재정준칙이 속히 도입될 수 있도록 정치권의 지혜로운 결단을 바란다.


이인호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